보수적 노동자와 군부
베네수엘라는 급진 좌파가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는 곳이지만, 지금까지도 동성혼 법제화에 실패하고 있다. 심지어 베네수엘라 헌법 제77조는 결혼을 '남녀'의 자유로운 동의에 기초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동성혼을 반드시 도입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없는 셈이다.
여기에는 뒷 이야기가 있다. 1999년 2월, 육군 중령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 때 소속 정당인 '제5공화국운동'은 소수 여당이었다. 당명에 드러난 것처럼, 차베스는 집권 전부터 개헌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것을 공약했다.
1999년 2월에 차베스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의회 해산과 제헌 의회 소집을 선언했다. 4월에 국민투표를 열어서 개헌의 정당성을 확인받았고, 8월에 제헌 의회를 소집했다. 이 때 제5공화국운동은 80%에 달하는 의석을 차지 했다. 제헌 의회는 새 헌법을 확정지었고, 12월에 국민투표를 열어서 새 헌법의 정당성을 굳혔다.
제77조가 새 헌법에 들어간 것은 저 8월과 12월 사이다. 원래 헌법 초안은 결혼 대상을 남녀로 못박고 있지 않았다. 또한 인종, 성별, 신념, 사회적 지위 뿐만 아니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 조항도 포함했다.
여기서 가톨릭 교회가 개입했다. 베네수엘라의 가톨릭 성직자들은 차별 금지 목록에서 성적 지향을 빼야 한다며 반발했다. 차베스 본인은 교회와 협력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교회의 저항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가톨릭 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군부와 노동자 대다수도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2007년에 다시 한 번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개헌안이 만들어졌지만 이때는 국민투표로 부결되었다.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민중은 성소수자 권리에 반대하거나 무관심했다. 베네수엘라 사회주의자들도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차베스는 정권 안정을 위해 괜한 갈등을 피하기로 했다. 무리하게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국유화하고 협동조합 농장을 확대하면서도, 성소수자 권리에 대해서는 적극 나서지 않았다. 한 쪽에서 혁명을 달성하려면 다른 쪽에서는 타협해야 했다.
물론 차베스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미 사회주의자들은 경제 영역에서 상당히 급진적이었지만, 문화 영역에서는 꽤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뿌리 깊은 기독교 문화에 맞서기보다는 타협하는 편이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지지 기반인 노동자의 보수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미 사회주의자들을 '보수 좌파'라고도 부른다.
흔히 노동자와 빈민을 진보 운동의 동력으로 여기지만, 그것도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르다. 남미 노동자들처럼 사회주의 경제와 전통적인 가족 문화를 동시에 바라는 경우도 흔하다. 민중이 모든 영역에서 진보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프랑스 혁명 때 진작 깨졌다. 보수적 노동자, 보수적 빈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그 사실을 한 번 더 보여주는 사례다.
참고자료
Blofield, M., Ewig, C., & Piscopo, J. M. (2017). The Reactive Left: Gender Equality and the Latin American Pink Tide. Social Politics, 24(4), 345-369.
Friedman, E. J. (2009). Gender, Sexuality and the Latin American Left: testing the transformation. Third World Quarterly, 30(2), 415-433.
Friedman, E. J. (Ed.). (2019). Seeking Rights from the Left: Gender, Sexuality, and the Latin American Pink Tide. Duk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