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능력주의적이지 않다.
소득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데 사교육비는 꾸준히 오른다. 국가 장학금이 많이 늘었다지만 그 전에 생긴 학자금 대출이 조 단위다. 애초에 장학금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나누는 돈이 아니다. 대체로 매우 가난하거나 매우 똑똑한 사람에게 가장 유리하다.
직업마다 소득과 안정성이 확연히 달라지는 탓에 수많은 학생이 특정 학과, 특정 진로에 몰리고 있다. 이런 병목 현상 탓에 수능이나 공시 등은 정말 일에 필요한 능력을 측정하는 과정이 아니라 억지스런 문제를 내서 사람을 걸러내는 절차로 전락했다. 이런 난이도 거품이 사교육비 상승을 더 자극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10대, 20대 시절에 이미 억 단위 자산을 물려받지만, 대다수는 1억을 마련하기 위해 까다로운 정부의 적금 지원을 이용해야 한다. 그나마도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사람에게 가장 유리하다. 소득이 적거나 불안정한 청년은 이용하기 어렵다.
부모의 소득, 자산 수준은 자녀의 학력과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산모가 지위 불안을 겪으면 아이는 취약해진 상태로 성장할 수도 있다. 몇몇 청년은 부모의 빚 또는 병원비를 대신 감당하고 있다. 또 몇몇은 보호자 없이 자라서 빈손으로 경쟁에 던져진다.
노동과 경영으로 돈을 벌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탓에, 수많은 사람이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과 금융 지대를 노리고 있다. 창업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금융 전문가도 아닌 공무원이나 심사 위원이 사업성과 지속가능성을 충분히 따지지 않은 채 자본을 배분하고 있다.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정치적 보상 차원에서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장으로 취임하고 있다. 선출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해 정부 개발 계획에 개입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사실상 공공기관이나 마찬가지지만, 회장을 지역 조합장이 선출하기 시작한 뒤로 줄곧 금품선거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덕목이 없는 학원 강사와 유튜버가 중진 정치인도 압박할 만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당은 직접 유능한 선출 정치인을 선별하고 육성하기보다, 오직 선거 승리를 위해 한순간에 유명해진 사람을 영입하는 곳이 되었다.
나라 상태는 이렇지만, 운 좋게 횡재를 얻은 졸부들이 불합리한 특권 의식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하찮게 대한다. '성공'한 사람 일부는 자신이 누린 지대와 행운을 모두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뤘다고 착각한다.
대체 어떤 면에서 능력주의가 과하다는 걸까.
부당한 특권과 공정한 세상 착각은 능력주의라는 발상이 확산하기 전에도 팽배했다. 몇몇 대기업과 스포츠 협회는 성과에 따라 보상하고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이 유행한다는 사실은 능력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능력주의, 즉 어린시절도 포괄하는 기회 균등, 공정한 경쟁과 평가, 지적이고 도덕적인 공적에 따른 보상은 여전히 사회 전반에 자리잡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능력주의 비판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불과하다.
"모든 지대가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세금으로 징수될 때, 그때 자연이 명령한 평등이 달성될 것이다. 어떤 시민도 그의 근면, 기술, 지능에 의해 주어지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시민보다 우위를 갖지 않을 것이며, 각자는 자신이 공정하게 벌어들인 것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노동은 완전한 보상을 받고, 자본은 자연스러운 수익을 얻을 것이다."
-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8권 3장 마지막 단락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부의 상속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 (...) 상속된 부는 또한 기여와 소득 사이의 결정적인 연결을 단절시킨다. 만약 어떤 부를 받을 자격이 없다면 —상속받았다면 자격이 없다— 그것이 생산하는 투자 소득도 받을 자격이 없다.”
- 토마스 멀리건, Meritocrac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23.08.03
능력주의를 중점적으로 다룬 슬로우뉴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