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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24. 2022

스웨덴 모델의 기초를 닦은 청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닐스 칼레비'

스웨덴의 '닐스 칼레비'와 우리나라의 태극기 부대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정부의 경제 개입이라면 무엇이든지 사회주의라고 부른다는 점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닐스 칼레비는 태극기 부대와 다르게 사회주의자라는 점입니다.

1926년에 눈을 감는 닐스 칼레비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10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점진적으로 발전하며,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미국의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향점이 된 '스웨덴 모델'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사람입니다.

칼레비가 활동할 당시,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민주적 집권이라는 현실과 사회주의라는 이상 사이에서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회민주당이 민주적으로 집권하려면 노동자 뿐만 아니라 농민과 중산층도 포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농민과 중산층이 사적소유 폐지에 찬성해 줄 리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를 내려놓자니, 당원과 노동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칼레비는 독특한 사회주의 이론으로 사회민주당 앞에 놓인 딜레마를 단박에 해결해 줬습니다. 칼레비의 사회주의는 대략 이렇습니다. 우선, 사회주의는 모든 사람이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하는 데에 공동으로 참여할 권리를 갖는, 더 민주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사회주의 사회를 실현하려면, 소수가 생산수단을 독단으로 운용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 때, 사회주의의 적은 모든 사적소유가 아닙니다. 사회주의자가 폐지해야 것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이 누구의 간섭도 없이 생산수단을 통제할 권리입니다. 즉, 사회주의의 적은 규제받지 않는 소유, 다른 말로 '부르주아적 소유'입니다.

칼레비에 따르면,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할 권리는 하나의 권리가 아니라, 여러 법적 권리들의 묶음입니다. 사적소유권이란, 노동자를 자유롭게 고용하고 해고할 권리, 가격을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 생산수단을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 등을 한꺼번에 부르는 말입니다.

만약 기업인이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규제하거나 생산수단을 마음대로 양도할 수 없게 막는다면, 그만큼 정부가 소유권 묶음의 일부를 폐지하고 생산수단의 독점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부의 경제 개입은 단순히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사회민주당이 만든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와 어중간하게 타협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산수단의 독점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국가입니다.

"8시간노동법, 노동자안전보호법, 산업재해보험법 등이 소유권의 변동, 즉 생산수단의 사용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소유주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이전시키는 조치가 아니고 다른 무엇이란 말인가?"
- 닐스 칼레비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신정완 저)

정부가 소유권 행사를 일부 규제하면, 자본가는 아무리 토지와 금융 자산을 많이 소유해도 순전히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형식적인 자산 격차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자산에 누가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가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칼레비의 사회주의 덕에,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사회주의적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동시에, 신고전파 경제학 이론에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무려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억제하거나 생산성을 키우기 위해 경쟁을 활성화하는 유연함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물가 안정을 위해 임금을 억제해도, 경제 성장을 위해 사람들을 경쟁시켜도, 민주주의가 생산수단의 독점 소유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칼레비의 사회주의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정당이자 자본주의의 효율적인 관리자가 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회주의자가 보다 민주적인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시장경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칼레비는 시장 경제를 민주적인 경제라고 봤습니다. 시장경제에서는 기업이 무엇을 생산할지 소비자 대중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칼레비는 시장경제에서의 구매와 민주주의에서의 투표가 똑같은 행동이라고 봤습니다. 구매력은 곧 투표권입니다.

"투표용지와 구매력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이한 방식이다. 근본적으로 양자는 동질적이다."
- 닐스 칼레비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신정완 저)

다만 평등한 투표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정치와 다르게, 시장경제에서는 투표권이 불평등하게 분배됩니다. 소비자는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 결정하는 일에 1인 1표를 갖고 참여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는 각자 시장에서 분배받은 구매력에 따라 차등적인 투표권을 나눠 갖습니다.

칼레비는 시장경제를 보다 민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구매력을 되도록 균등하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이 고르게 구매력을 갖게 되면, 기업은 민중의 의사에 따라 재화를 생산하게 됩니다. 즉, 시장경제를 폐지하지 않아도, 정부가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면, 모든 사람이 무엇을 생산한지 결정할 때 균등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민주적 경제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스웨덴 모델의 기초가 된 사회주의 이론입니다. 이런 이론 탓에, 스웨덴은 상당히 균등한 소득 분배와 엄청난 자산 격차가 공존하는 독특한 경제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스웨덴 모델은 여러 변화를 거쳤지만, 그 기본 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는 여전히 칼레비의 영향 아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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