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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Feb 21. 2023

유교는 잘못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공자님 말씀 따라 산 적이 있던가요?

유학자는 억울할 겁니다. 유교가 저출산의 결정적인 원인이라면, 동아시아는 천 년 전부터 저출산 문제를 겪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유교가 나라의 유일한 통치 이념이던 시절,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이 저출산 문제를 겪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엄격한 유교 국가였던 송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번성하는 나라였고, 조선 역시 어지간한 서양 국가보다 인구가 많았습니다. 이학금지령을 내리고 성리학만 보호하던 에도 막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장 60 - 70년대에만 해도, 한중일은 너무 가파른 인구 증가를 우려해서 산아제한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정말 유교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면, 여전히 중국 혼자서 유럽 전체 인구를 압도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교를 대하는 모습은 도킨스 류 전투적 무신론자가 기독교를 대하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둘 다 구체적인 역사와 내용은 관심 없으면서, 특정 사례만 보고 어떤 종교 또는 사상을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다 보니 자리잡은, 수직적으로 엄격한 집단주의 문화를 모조리 유교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정작 진짜 유학자들은 객지에서 열 살 차이 나는 선비와 친구 먹고 살았습니다. 오성과 한음도 다섯살이나 차이 났지만, 입학 년도가 일 년 차이나는 현대의 대학교 선후배보다 수평적으로 지냈습니다.

심지어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송나라에서는, 선비들이 전통적인 전제군주제를 대놓고 거부하고 입헌군주제를 닮은 독특한 정치질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송나라의 정치질서를 황제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의 세상이라는 뜻에서 '공천하'라고 부릅니다.

유교가 다른 종교 또는 윤리 사상보다 특별히 엄격하지는 않습니다. 성욕을 경계하지 않은 종교는 거의 없습니다. 서구의 성공을 견인한 주력으로 평가받는 기독교도 어떤 영역에서는 유교 이상으로 개인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육식을 금지하고 음핵을 자르는 종교에 비하면, 유교는 자유분방한 편입니다.

애초에, 남 눈치를 보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집단이 존재한 적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모든 사회규범은 각자가 타인의 눈치를 보며 행동을 조절하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자유분방하다는 서구 사람들도 팁이나 식사 예절 등, 나름의 엄격한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눈치를 줍니다. 눈치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사이코패스입니다.

동아시아의 저출산 문제는 유교가 남긴 눈치 보기 문화 탓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이상 예전처럼 눈치를 보지 않게 되어서 일어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눈치 보기가 예전만큼 엄격했다면, 아이를 낳고 기르지 않는 사람은 불효자로 낙인 찍혀서 명절날 고향에 방문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유교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기독교가 십자군 전쟁의 원인이라는 주장 만큼 허무맹랑합니다. 저출산은 출산을 강제하던 전통 사회규범의 붕괴와 과도한 경쟁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현상 탓에 일어난 일이지, 출산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 유교 탓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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