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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Feb 21. 2023

글쓰기를 다시 위대하게.

Make Writing Great Again

글이 점점 외면받는 시대, 학력 없는 글쟁이인 제가 비집고 들어가야 할 공간은 출근 시간대 1호선 같은 상태입니다. 이런 와중에 웹툰이나 유튜브 쇼츠처럼 보다 본능적인 콘텐츠가 등장한 탓에, 가뜩이나 좁은 공간이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글로 돌릴 수만 있다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항상 다른 사람과 나눌 이야깃거리를 찾는 사회적인 동물에게, 콘텐츠는 커피처럼 필수적인 기호품이기 때문입니다. 가라앉은 것은 글에 대한 관심이지,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동적이고 짧은 콘텐츠를 주로 찾는다는 점입니다. 글은 정적이고 느린 콘텐츠입니다. 종류와 난이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글은 꽤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부하고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글 읽기는 꽤나 사치스러운 취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원 전철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은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그 틈을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그려낸 박시백 작가에게서 찾았습니다.

박시백 작가는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가 끝난 이후로 침체되어 있던 우리나라 역사 만화계를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비록 작품 곳곳에 편향된 시각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깊이 있는 자료 조사와 너무 무겁지 않은 표현 방법으로 사람들이 지루한 역사 이야기를 다시 찾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글 콘텐츠 시장이 위축된 데에는 기존의 글쓰기 방식 탓도 있습니다. 한 쪽 끝에는 자료 조사도 없이 누군가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나 남의 생각을 내 생각처럼 포장해서 실은 에세이가 있고, 다른 한 쪽 끝에는 빼곡한 참고문헌에서 나온 지식을 읽기 힘든 문장에 욱여넣은 논문이 있습니다. 제 직감이지만, 두 극단에 지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읽기 쉬운 문장에 약간의 흥미와 충분한 참고문헌을 더해서 주관 있게 시사 이슈나 정치 사상을 풀어낸다면, 너무 가벼운 에세이나 너무 무거운 논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낸다면, 깊이 있는 이야깃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을 결집시켜서 글 콘텐츠 시장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역사 만화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런 희망에 기대서 매일 글을 쓰고 편집하고 있습니다. 힘으로 글 콘텐츠 중흥기를 이끌어낸다면, 죽어서도 자랑할 거리가 하나 쯤 생길 것 같습니다. 문과가 죽고 이과의 시대가 왔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글 잘 쓰는 이과생이 학위를 따고 베스트셀러를 남기기 마련입니다. 화려한 영상들 탓에 잠시 외면받고 있을 뿐, 글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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