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완 Feb 24. 2023

부장님을 브라이언이라고 부르면 뭐가 달라질까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수직적으로 명령하는 나라.

우리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수직적으로 명령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에도 막부 말기, 일본에서는 '막말'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요시다 쇼인은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되는 이념을 다듬었습니다. 그 핵심은 '일군만민'이었습니다. 일군만민이란, 일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임금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해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신은 막부 시대처럼 사무라이와 일반 백성이 철저히 계급으로 분리된 상황에서는 일치단결해서 하나의 국가 대의를 추구할 수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하나의 임금'입니다. 요시다 쇼인은 전통 계급 사회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단결하자고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금, 즉 천황의 권위 밑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천황 앞의 평등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쇼인의 사상은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지만, 그 내용은 전혀 근대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일본적이었습니다.

일군만민 사상은 막부의 무능함에 지친 사무라이와 백성 사이에서 순식간에 유행했습니다. 막부의 권위도 결국 임금님에게서 나오는 마당에, 임금님께 충성하자는 생각을 거스를 수 있는 사무라이는 없었습니다. 천황을 등 뒤에 두고 막부를 타도한 세력은 사무라이의 봉토를 빼앗고, 복식을 빼앗고, 최종적으로는 사무라이가 누리던 모든 특권을 빼앗았습니다. 훗날, 일군만민 사상은 '대일본제국 헌법'으로 완전히 실현되었습니다.

이런 반사무라이 정책 때문에, 영화 '라스트 사무사이'의 모티브가 된 사무라이들의 반란이 몇 년 동안 일어나게 되지만, 새로운 정부는 서구식으로 훈련받은 새로운 군대의 힘으로 순식간에 제압했습니다.

대일본제국 헌법이 제정되면서, 모든 사람이 법적으로 수평해졌지만, 이 수평함은 어디까지나 천황제라는 수직 구조를 전제했습니다. 자연히, 천황의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뒤집어 질 수 있었고, 실제로 과격한 군부 세력은 천황의 권위를 앞세워서 온건파 군인과 의회를 제압하고 군사 독재를 실현했습니다. 그 군사 독재의 결과물이 태평양 전쟁이었습니다. 원자폭탄을 맞을 때까지, 일본인은 천황의 의지를 실현하는 군과 복종하는 국민이라는 새로운 수직 구조 밑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수직적으로 명령하는 일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회장님 앞에서의 평등'은 회장의 변덕에 따라서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그런 변덕을 예상하는 중간관리자 탓에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수백 년 간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은 권위 의식이 사라질 리가 없습니다.

정말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원한다면, 기업인은 지분과 경영권부터 직원들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회장 독단으로 기업을 경영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직원들이 꼰대짓하는 중간관리자에게서 벗어날 힘을 갖게 될 때,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정말로 모두가 수평해지기 위해서는, 수평한 대우를 강제할 수 있을 만큼, 힘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힘의 균형 없이는 수평한 관계도 없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를 다시 위대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