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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24. 2022

재분배 없는 시장경제는 불안정합니다.

시장경제 자체에 맹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 경제가 존속하려면 적절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특히,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을 적게 가진 사람에게 나눠주는 재분배가 필요합니다. 시장은 교환할 수단을 가진 참여자가 많을 때에만 존속할 수 있는데, 대다수는 시장에 참여할 교환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시장 경제는 각자가 가진 것을 되도록 많은 화폐와 교환하고 그 화폐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얻는 생활 방식입니다. 시장 경제는 상품 경제입니다. 상품이란, 화폐와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화폐와 교환해야 얻을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통틀어서 말합니다. 시장 경제는 상품으로 화폐를, 화폐로 상품을 교환하는 경제입니다.

모든 상품에는 가격이 책정됩니다. 가격이란, 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 즉 상품이 얼마 만큼의 화폐와 교환될 수 있는지 화폐를 단위 삼아서 표시한 것입니다. 하나에 2000원인 과자는 1 대 2000의 비율로 화폐와 교환되는 상품입니다.

시장 참여자는 화폐를 얻고 싶어 합니다. 즉 이윤을 벌고 싶어 합니다. 이윤이란, 어떤 상품을 얻을 때 들인 화폐보다 더 많은 화폐와 교환했을 때 발생한, 남은 화폐입니다. 200원으로 교환한 상품을 나중에 500원과 교환했다면, 300원의 남은 화폐, 즉 이윤을 얻은 것입니다.

시장 경제에서 모두가 다른 상품을 공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상품을 공급합니다. 이 때, 공급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팔기 위해 경쟁합니다. 여기서 시장의 뛰어난 생산성과 혁신성이 자라납니다. 반대로, 상품을 얻으려는 사람들끼리 하나라도 더 구매하기 위해 경쟁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경우는 경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시장 경제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경쟁이 일어납니다. 이 때, 각자에게 선택권이 없다면 경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상품 교환, 가격 체계, 이윤 추구, 자유 경쟁. 이것이 시장 경제의 기본 틀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시장 경제에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 경제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원하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만의 세계입니다. 시장 경제에 참여하려면, 화폐와 교환될 만한 상품이나 상품과 교환할 만큼의 화폐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시장경제 안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상품이며, 상품이 화폐와, 화폐가 상품과 교환됩니다. 다시 말해, 시장 경제에 참여하는 행위조차 공짜가 아닙니다.

문제는, 모두가 상품이나 화폐를 끊임 없이 생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상품을 생산할 수단, 다른 경쟁자를 이길 혁신성, 그런 것이 없어도 상품를 구할 수 있을 만큼의 화폐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는 무산자입니다. 설령 유산자라고 하더라도, 비합리적인 선택을 반복해서 무산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산자는 가진 것이 몸 뿐입니다. 기술을 배워서 노동을 공급하거나, 그도 안 되면 장기나 성적 서비스를 공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술을 배우는 것도 공짜가 아니며, 장기나 성도 무한한 상품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노동과 장기, 성은 언제나 공급이 넘쳐나는 상품이라,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높은 가격을 책정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대다수의 교환 수단은 가만히 놔두면 꾸준히 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직 토지나 자본 같은 생산 수단을 가진 사람만 안정적으로 교환 수단을 재생산할 수 있습니다.

시장 경제는 교환할 수단이 있는 사람, 다시 말해 화폐나 상품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교환 수단이 있는 사람이 늘어나면 시장 경제는 활기를 얻고, 줄어들면 위축됩니다. 교환 수단이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 시장 경제도 사라집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가진 것을 무상으로 내놓지 않으면, 모든 것이 유상인 시장 경제는 버틸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장 경제는 재분배 없이 존속할 수 없습니다. 시장 경제를 유지하려면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정부가 적절히 소득과 재산을 재분배하지 않으면, 시장은 붕괴할 것입니다.

만약 부유층이 충분히, 그리고 적절한 곳에 재산을 기부한다면, 시장 경제는 재분배 없이도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부자는 많지 않습니다. 부유할수록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한다는 심리학 연구도 있는 만큼, 모든 부자가 충분히 그리고 적절히 기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언제나 선하고 합리적으로 선택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물론, 재분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지나친 재분배 역시 시장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동등한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재분배는 시장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재분배는 어디까지나 사회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생활 수준과 더 많은 교환 수단을 확보할 기회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절제할 때 술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사회는 정부가 적절히 규제할 때 자유 시장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론 상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실제 인간을 이해하는 시장주의자, 방임된 시장이 초래하는 불의한 결과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도구 그 자체를 사랑하는 시장주의자는 시장을 지키기 위해 재분배를 지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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