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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25. 2022

새로운 빈곤 대책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은 부족합니다.

산업화 이후로 절대 빈곤이 급감했다지만, 우리나라는 빈곤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선진국 중 가장 상대적 빈곤율이 높고, 빈곤율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이 부족합니다. EU처럼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용인되는 생활수준을 누릴 수 없을 만큼 소득과 자원이 지나치게 부족할 경우"를 빈곤으로 정의하고 분석해 보면, 빈곤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해 질 수도 있습니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이 노동시장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면서, 빈곤이 극심해 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비관을 믿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생존 가능한 소득을 평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소위 말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입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빈곤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우선 예산을 마련하는 일부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4000만 명에게 상대적 빈곤선보다 살짝 높은 수준인 100만 원을 매달 지급하려면, 480조 원이 필요합니다. 2021년 우리나라 정부의 총수입이 482조 원, 총지출이 558조 원입니다. 복지 예산, 교육 예산, 행정 예산을 다 통폐합해도 보편적 기본소득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생존 가능한 소득보다 한참 부족한 수준인 50만 원을 지급한다 해도 240조 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복지 예산은 200조 원 수준입니다. 기존 복지제도를 다 폐지해도 전국민에게 월 50만 원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만약 월 50만 원을 지급하기 위해 기존 복지제도를 다 포기한다면 더 많은 인구가 빈곤해 질 것입니다. 기존 복지제도가 제공하던 서비스를 민간이 비슷한 가격으로 공급하기는 힘듭니다. 애초에 수익성이 부족해서 공급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고작 월 50만 원으로 각자가 민간이 공급하는 복지 서비스를 구매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월 100만 원을 지급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정말 로봇이 노동시장을 붕괴시킨다면 자본주의는 근본부터 흔들릴 것입니다. 그때는 카를 카우츠키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구의 대다수가 프롤레타리아가 되었으니 그들을 조직해서 자본주의 다음을 고민해야 할 단계입니다. 고작 기본소득으로 문제를 억누를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좀 더 낙관적인 사람들은 기존 노동시장이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정부가 상대적 빈곤선보다 부족한 부분만 벌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소위 말하는 '안심소득제'입니다.

안심소득제는 보편적 기본소득보다는 실현하기 쉽습니다. 예산도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에 따르면, 상대빈곤층 600만 명의 소득을 상대적 빈곤선까지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예산은 20조 원 정도입니다. 기존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자잘한 정부 사업 예산을 통폐합하면, 세금을 올리지 않아도 당장 예산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심소득제에도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안심소득제는 스스로 빈곤에서 벗어나려 할 수록 소득 지원이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사람은 일해서 버는 돈보다 공짜돈을 더 선호할 수 있습니다. 편리함은 중독적입니다. 다시 말해, 안심소득제는 노동 의욕을 꺾어서 계급을 고착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비슷한 제도를 실험했지만, 노동 의욕을 꺾는다는 비판 때문에 실험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안심소득제 지지자들은 빈곤의 기준을 굉장히 좁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안심소득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의미하는 상대적 빈곤에만 집중합니다. 상대적 빈곤선보다 부족한 부분만 채워 주면 빈곤 문제가 해결된다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아서, 중위소득이 평균소득보다 매우 낮은 편입니다. 월 100만 원만 벌어도 상대적 빈곤층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월 100만 원으로 생활하는 것도 충분히 궁핍한데, 안심소득제는 월 100만 원을 넘는 순간 더 이상 도와주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심소득제가 빈곤을 예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안심소득제는 그 수혜자가 늘어나는 사태를 예방할 수 없습니다. 빈곤층이 늘어나면 정부는 계속 예산을 투여해야 합니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단순히 당장 빈곤하지 않게 해주는 정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경쟁력을 키워주고 적절한 소득을 벌 수 있는 수단을 보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애초에 안심소득제의 수혜자가 되지 않게 돕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좌파든 우파든, 사회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온건한 사람이라면 사회가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할 것입니다. 빈곤이 확산되면 사회 질서와 평화가 무너집니다. 생존이 급해진 사람들은 더 이상 도덕이나 타인의 권리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빈곤 퇴치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국회는 큰 증세 없이, 빠르게 시행할 수 있는 빈곤 대응 정책을 도입하는 데에 합의해야 합니다.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합니다. 정쟁은 그 다음입니다.

"모든 권리 중 첫 번째는 생존권이다."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모든 사회기관의 목적은 사회에서 가장 수가 많지만 가장 가난한 계층의 도덕적, 물질적 능력의 향상이어야 마땅하다."
- 생시몽주의 저널 '르 글로브'

"자유주의적 정부는 사치와 빈곤 사이의 불균형이 계급 적대로 확대되어 사회의 안정과 사적 재산 자체의 지배를 위협할 정도로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스티븐 홈즈, '권리의 대가'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최저소득을 보장하는 것, 혹은 그 자신이 스스로 생계를 얻지 못할지라도 아무도 일정한 수준 이하로 생활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법, 입법 그리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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