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정말 바보 같아요. 이해력도 떨어지고 외워도 자꾸 까먹어요. 공부한다고 10시간씩 앉아있어도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는 것이 없어요. 특히 집중이 안되고 다른 생각이 자꾸만 나요. 아무래도 정말 머리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제가 먹을 수 있는 약이 없을까요?
하은 씨 바보가 아니라 마음이 우울해서 그래요...
네? 선생님 저 하나도 안 우울한데요.
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보고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내가 바보라는 점이었다. 어느 날엔 동네 정신과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머리가 똑똑해지는 약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마음이 힘들어 그렇다는 진단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한 사람은 아니었다.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 수 있는 나는, 점심시간이면 밥 먹을 생각에 들뜨는 나는 여느 평범한 고등학생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공부를 잘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우울증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이라는데 더군다나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좀 더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말을 듣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약을 처방받으러 갈 때면 선생님은 내 나이에 맞는 약과 복용량을 찾느라 마우스를 딸깍거리곤 하셨다.
아... 이 약을 주고 싶은데 아직 안되네요.
그 약을 먹었으면 조금 더 똑똑해졌을까? 사실 약을 먹어도 그다지 명석해지는 느낌을 못 받았다. 여전히 책상에만 앉으면 잠이 쏟아졌고 다른 생각이 나서 집중을 하지 못했으며 이해가 다 되었다 생각한 부분은 또다시 잘못 이해하곤 했다. 그러니깐 여전히 나는 바보였다.
약을 먹어도 안되니 이젠 정말 우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 더 이상 병원은 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 어쩌면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울한 상태였다. 웃고 떠든다고 해서 우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집중이 안 되는 것도, 자꾸만 잠이 오는 것도, 무언가에 쫓기듯 글씨를 썼던 것도, 이미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마음이 퍼렇게 물들었다는 증거였다.
'어려운 집 대학이라도 잘 가서 보탬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잘난 친구들이 많다니 공부라도 잘해야 하는데.'
'나는 그저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대학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매번 큰 상실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안 되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나를 못난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것 같다. 웃고 떠들고 밥을 먹으면서도 언제나 마음에 그늘이 져 있었다는 것을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알았다. 우울증이라고 해서 매 순간 슬퍼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