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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화 Oct 31. 2023

웃고 떠든다고 우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선생님 저는 정말 바보 같아요. 이해력도 떨어지고 외워도 자꾸 까먹어요. 공부한다고 10시간씩 앉아있어도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는 것이 없어요. 특히 집중이 안되고 다른 생각이 자꾸만 나요. 아무래도 정말 머리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제가 먹을 수 있는 약이 없을까요?


하은 씨 바보가 아니라 마음이 우울해서 그래요...


네? 선생님 저 하나도 안 우울한데요.


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보고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내가 바보라는 점이었다. 어느 날엔 동네 정신과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머리가 똑똑해지는 약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마음이 힘들어 그렇다는 진단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한 사람은 아니었다.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 수 있는 나는, 점심시간이면 밥 먹을 생각에 들뜨는 나는 여느 평범한 고등학생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공부를 잘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우울증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이라는데 더군다나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좀 더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말을 듣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약을 처방받으러 갈 때면 선생님은 내 나이에 맞는 약과 복용량을 찾느라 마우스를 딸깍거리곤 하셨다.


아... 이 약을 주고 싶은데 아직 안되네요.


그 약을 먹었으면 조금 더 똑똑해졌을까? 사실 약을 먹어도 그다지 명석해지는 느낌을 못 받았다. 여전히 책상에만 앉으면 잠이 쏟아졌고 다른 생각이 나서 집중을 하지 못했으며 이해가 다 되었다 생각한 부분은 또다시 잘못 이해하곤 했다. 그러니깐 여전히 나는 바보였다.


약을 먹어도 안되니 이젠 정말 우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 더 이상 병원은 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 어쩌면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울한 상태였다. 웃고 떠든다고 해서 우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집중이 안 되는 것도, 자꾸만 잠이 오는 것도, 무언가에 쫓기듯 글씨를 썼던 것도, 이미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마음이 퍼렇게 물들었다는 증거였다.


'어려운 집 대학이라도 잘 가서 보탬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잘난 친구들이 많다니 공부라도 잘해야 하는데.'

'나는 그저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대학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매번 큰 상실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안 되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나를 못난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것 같다. 웃고 떠들고 밥을 먹으면서도 언제나 마음에 그늘이 져 있었다는 것을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알았다. 우울증이라고 해서 매 순간 슬퍼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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