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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화 Nov 03. 2023

우리 집은 엄마 옷을 뺏어 입는다

포니와 햇볕 쬐러 간 길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하루에 2-3번 정도 전화하는데 매번 용건이 다르다. 가끔 맞출 때도 있지만 틀리는 때가 대부분이다.


너 엄마 그 갈색 셔츠 입었어?

내가 멋쟁이 같다고 한 옷? 아니.

그럼 또 이채원이네.

알았어 끊어봐 봐. 옷에 파운데이션 다 묻혔네.


이제 엄마의 전화는 나에게서 동생으로 넘어간다. 이번에도 채원이가 시치미를 떼려나? 진짜 입기는 했을까? 혹시 나도 모르게 내가 입었던 것은 아니겠지? 하며 둘에게 일어날 일을 상상해 본다. 그동안 나는 둘에게 일어난 일도 참견해서 누가 맞는지 아닌지 이야기를 듣고 판단했는데 더 이상 그건 잘 안 하려고 한다. 둘의 싸움이 셋으로 번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아빠, 엄마, 나, 동생, 포니 이렇게 넷이었다. 아빠, 엄마가 둘이 살게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던 때이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모두가 있는 것이 당연한 집이었는데 동생과 내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우린 아빠 엄마가 있는 집에 자주 간다. 분명 나의 엄마 아빠가 있는 내 집이기도 한데 이젠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여자 셋이 사는 집은 옷전쟁이 일어나기 쉽다. 특히나 돈이 없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돈 있는 사람의 옷을 뺏어 입는다. 우리 엄마는 나와 동생 중에 가장 돈이 많을뿐더러 옷 사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집에 돈이 없을 때도 엄마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꾸밈이었다. 저렴하고 예쁜 옷을 사기 위해 동대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열정까지 보이는 그런 사람이다. 우리 집엔 엄마의 옷이 많다.


어린 시절 내게 엄마의 꾸밈은 늘 과하게 비추어졌다. 이 옷 저 옷 입으며 방구석 패션쇼를 하는 엄마를 보다가 정반대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에야 좀 꾸미기 시작했지만 난 단순한 게 최고야 꾸미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게 멋진 거야라며 치장을 멀리했다. 반면 채원이는 이야기가 다른데 딱 엄마를 복사해 붙여 넣은 모습 같다. 중학생 때부터 뷰티유튜버를 그렇게 보더니 화장의 도를 터득하기도 했다. 게다가 예쁜 옷 입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그러니 동생에게 엄마 옷장은 아웃렛 매장 같을 것이다.


엄마가 외출만 했다 하면 동생은 이 옷 저 옷 엄마의 옷을 뺏어 입는다. 그럼 집에 들어온 엄마가 채원이가 또 옷을 입고 나갔다는 걸 알아차리는데 뒷목부터 잡는다. 다음엔 전화기를 든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옷을 함부로 입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채원이는 수차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어놓고는, 엄마가 옷 입고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걸 가장 잘 알면서도 또 입고 나간다. (엄마 말로는 옷을 빌려 입을 수도 있긴 한데 걸레짝을 만들어온다고 한다. ) 그걸 보는 나는 엄마 편에서 그만 좀 입지 생각하다가도, 동생 편이 되어서 옷 좀 입으면 어떠나 생각하곤 한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갈색 셔츠는 누가 입은 걸까? 엄마가 동생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채원이가 입지 않았다고 말하네.

그럼 엄마가 했겠네요ㅋㅋㅋ

아녀요.


갈색 재킷에 파운데이션을 묻힌 건 나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채원이도 아니라는 것인데 그럼 대체 누가...? 엄마의 말을 듣고 동생에게 따로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너 이번엔 진짜 아니야?

진짜 모든 걸 걸고 아냐. 그 옷 뭔지도 몰라~

언니가 엄마한테 이야기해봐바.


아마 엄마는 여전히 채원이가 입고 나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졸지에 양치기 소녀가 된 채원이이다. 나는 진실을 나만 알고 있을 예정이다. 진짜든 아니든 앞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둘이 알아서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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