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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화 Dec 28. 2022

솔직한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당신께

정성을 다하는 효녀의 미래

입에 막히는 말이 있듯, 손에 멈추는 문장이 있다. 대개 솔직한 말들이 그렇다. 왜 우린 솔직한 글쓰기가 두려울까? 날 것의 글은 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나의 치부, 실패담, 가정사 등이 고스란히 담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려면 써야 하는데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괜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써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린 누구나 속사정이 있다. 학창 시절에 상처를 받았거나, 불합격 소식에 눈물을 흘렸으며, 드라마에 나올 법한 가정사에 골머리를 앓는다. 학창 시절 집이 어려웠다. 고등학교에 갔더니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나와 비슷한 사정을 가진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 자체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다. 솔직한 글을 내놓는 건 내가 친구를 만나고 위로받았듯이 누군가에게 힘을 준다. 먼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물꼬를 트는 일이다.


용기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임을 안다. 내가 먼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럴 땐 이 말을 기억해 보자. '글쓰기는 나를 위한 일이다.' 사실 공감과 위로는 차순위이다. 글을 쓰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건 나다. 솔직한 이야기를 써서 재해석해보자. 나를 지키는 보호막을 만들게 될 테니. 그런 글은 타인에게 공감과 위로까지 불러일으킨다. 나도 좀 더 솔직한 말씀을 드리겠다. 여러분은 남의 이야기를 얼마만큼 기억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세세하게 기억하는가. 떠올려보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남들도 똑같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금세 잊힌다. 사람들은 속사정 하나하나 기억하기보다 응원하는 마음만 남긴다.



[미소의 글: 정성을 다하는 효녀의 미래]


나는 스무 살에 '집에서 그냥 살 수는 없으니 내 몫을 해야겠다’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엄마와 역할 분담을 해 집안일을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살림이란 게 쉽지 않았다. 뒤집어져 있는 빨래,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릇은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동안 일하고 와서 살림까지 한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니 그 뒤로 자연스레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못하고 나온 날엔 걱정이 되었으니 이미 정신적으로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집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 둘 도맡기 시작했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선생님이 계신다. 은퇴도 하셨으니 연배가 꽤 되신다. 선생님은 내게 두 딸이 있는 어느 집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다. “하은 씨 결국 이기적인 딸이 잘 살더라.” 첫째는 돈도 시간도 부모에게 다 갖다 주는 효녀였고, 둘째는 자기 실속이 우선인 이기주의 딸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결국 잘 사는 건 둘째 딸이었단 말씀이었다. 그 뒤로 둘째 딸이 효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건 나에게서 그 첫째 딸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씀을 들은 후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모르시면서. 그런데 나도 그 첫째 딸처럼 되면 어쩌지?’ 한 데 뭉친 반발심과 걱정에 마음이 엉켰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3시간 동안 짐을 싸고 엄마에게 절을 한 뒤 가출했다. 도저히 집에서 못 살겠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나를 챙기면서 집에 벌어지는 일들까지 다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 심지어 갱년기인 엄마와 매일 같이 다투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래서 내가 보물이라고, 내가 최고라고 말하는 엄마를 버렸다. 지금 아니면 나가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집도 구하지 않고 말이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 묻는다면 엄마랑은 일주일 뒤 화해를 했고, 내 마음을 충분히 들려주었으며, 나는 독립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내가 집을 나갔기 때문일까? 그사이 엄마는 몸이 안 좋아져 코끼리 무릎이 되었다. 걷는 것도, 오래 일하는 것도 힘든 상태 말이다. 그에 반해 나는 조금 살 것 같다.


나는 이게 너무도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기 실속 못 차리는 효자, 효녀들은 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그렇다고 기울어지는 집을 외면하면 그 집은 무너진다. 모든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효자 효녀는 끊어내지도, 해결하지도 못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이 반복에 내가 택한 방법은 ‘우선 나’이다. 나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눈을 질끈 감는다. 보긴 본다. 그리고 감는다. 나에게 먼저 집중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눈을 뜬 뒤 집안 해결사가 된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우리 엄마, 아빠는 너무도 힘들게 두 딸을 키워왔다. 그 시간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외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를 우선시하기로 했다. 다 알면서도 자기가 먼저인 이 딸을 미워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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