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가훈의 비밀

by 스케치

내가 실내화 가방을 발로 차면서 들고 다니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선생님께서 '우리 집 가훈 알아오기'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그날 저녁, 거실에서 가족과 모여 앉아 있을 때 아빠에게 우리 집 가훈이 뭔지 물어 보았다.

"아빠, 우리 집 가훈이 뭐야? 학교에서 선생님이 알아 오래."


그 말을 듣자 TV를 보던 아빠는 살짝 당황한 것 같았다. '다른 집은 대부분 가훈이라는 게 있구나!'라고 그때 알아차린 듯 보였다. 아빠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근면, 검소, 친애야!"


아빠가 자신 만만하게 외쳤다! 하지만 당시 나에겐 너무도 어려운 단어였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몇 대 얻어맞은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자 아빠가 이참에 가훈을 정하자고 결심했는지 단어의 뜻을 설명해주었다.


"근면이란 성실하게 일 한다는 뜻이야. 그리고 검소는 절약한다는 뜻이야. 그러니 돈 좀 아껴서 써"


잔소리라면 질색을 하지면 예고없이 치고 들어온 잔소리에도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돈을 아껴 써야 되는구나!' 라며 신이 났다. 우리 집에도 가훈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신났던 것 같다.


"그리고 친애는 서로 사랑하라는 뜻이야."


간단명료한 아빠의 설명이 끝났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나는 새로운 걸 알게 됐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방방 뛰며 아빠에게 물어봤다.


"와! 그런데 우리 집에 가훈이라는 게 원래 있었어!?"


즉석에서 가훈을 만들어낸 아빠를 비꼬려는 건 아니었다. 아빠는 당황하거나 잘 모르는 질문이 들어오면 입을 닫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답은 듣지 못했다. 매우 아쉬웠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 아빠가 익숙했기 때문에 우리 집의 가훈이 뭔지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아빠의 사무실에 따라가게 됐다. 아마도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아빠의 동료 직원들에게 온갖 귀여움을 받으며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다. 가는 곳마다 환영 받는 건 꽤 신나는 경험이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되는 분의 개인 집무실에 들어가게 됐다. 아빠와 나는 그분의 커다란 책상 앞에 의자를 놓고 나란히 앉았다. 그분은 아빠의 상사였기 때문에 아빠는 꽤 공손한 태도였다. 동네 어른들에게 대하는 것과 사뭇 다른 새로운 모습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길어지는 그분의 훈화말씀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영특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머리가 꽤 돌아갔던 것 같다. 어린 애는 어린 애 다운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빠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지만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무실 한쪽 벽, 모든 직원이 앉은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자리에 걸려 있는 액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뭔가 익숙한 것들이 쓰여 있었다. 바로 우리 집 가훈이었다.


"근면, 검소, 친애"


세 단어가 붓글씨로 멋들어지게 쓰여있었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해봐야 했지만 상황 파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은 우리 집 가훈은 아빠 회사의 사훈이었고 아빠가 가훈을 급조하느라 사훈을 인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가 "아빠의 직장생활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앞에서 말했듯이 당시의 나는 '어린 애가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딱히 문제가 되지 않겠다고 판단하고 그분의 훈화말씀을 날카롭게 잘랐다. 그리고 사훈이 적혀있는 액자를 딱! 가리키며 외쳤다


"아빠! 우리 집 가훈이 여기에도 있어!"


그 순간 아빠는 내 말에 대답을 해야 할지 아들의 무례한 행동에 사과부터 해야할지 당황스러워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러나 나는 동요하지 않고 액자를 계속 가리켰다. 그분에게 확실히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기억나는 건 딱 하나다.


"허허허, 역시 자낼세"


그분은 사훈을 가훈으로 정한 아빠에게 만족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작전성공!'을 외쳤다. 그날에 대한 기억은 여기 끝나지만 꽤 뿌듯한 마음으로 사무실에서 나갔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린아이였던 내가 나이가 차고 성인이 되었다. 어느새 결혼도 했다. 나는 내 아내와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그날의 기억을 얘기했다. 그러나 유쾌한 그날의 기억에도 아빠는 입을 꾹 다물고 TV만 본다. 거실에 모여 앉아서 가훈을 물어보던 그날의 아빠와 내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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