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 살 때였을까? 단칸방에서의 기억이니 아마도 4살 정도 됐을 것이다. 그럼 동생은 2살이었다. 이때 우리는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리고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2살이 종이비행기를 접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내 기억은 정확하다. 집 앞 비포장도로에서 뒤뚱뒤뚱 모래 끌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는 작은 아기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어쨌든 우리는 종이비행기에 매료됐었다. 종이로 직접 접은 비행기가 둥실둥실 날아가는 모습을 볼 때의 그 신기함을 맛본 이상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종이비행기를 날리니 아빠가 회사에서 이면지 다발을 가져왔다. 어디 한번 마음껏 접어 보라는 것이었으리라. 나는 그 다발을 들고 온 아빠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최고의 선물이었으니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 이면지로 수없이 많은 비행기를 접었다.
그런데 이 놀이의 핵심은 둥실둥실 날아가는 비행기를 구경하는 것인데, 어째서인지 내가 접은 비행기는 하나같이 손을 떠나자마자 추락해서 땅에 코를 박았다. 멋지게 날아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도 함께 추락하는 것 같았다. 그와 다르게 동생의 비행기는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방향 전환도 하고 땅으로 내리꽂다가도 다시 균형을 잡으며 비행했다. 질투가 났다. 내 비행기도 멋지게 날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더 정성스럽게 접어 봤지만 역시나 코를 박았다. 나는 찌그러진 코를 복원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질투가 났던 진짜 이유는 내가 보기에 동생은 비행기를 대충 접었다. 난 한 번 접을 때마다 손톱의 등으로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접었고 동생은 대략적인 모양만 만드는 수준이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정성스럽게 접은 비행기가 더 잘 날아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비행기만 추락했다.
아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종이비행기는 나처럼 꾹꾹 눌러서 접으면 잘 못난다고 한다. 내 동생처럼 대충(?) 접어야 비행기가 양력을 더 잘 받는다나 뭐라나.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몰랐으니 내 비행기가 잘 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매우 속상한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난 더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멋지게 날아가는 내 비행기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는 동생의 모습 말이다. 동영상을 틀어 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보이는 그날의 기억이 나에게는 어떤 값진 것보다 더 소중하다. 나의 비행기가 잘 날았더라면 과연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