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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Jun 24. 2019

우리의 남극 탐험기

'우리의 남극 탐험기' / 김근우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우리는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늘 일탈을 꿈꾼다. 현실이 많이 힘들고 지친다면,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게 어떨지.



이 소설은 주인공과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이라는 영국인 박사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다 둘이 만나 함께 남극 탐험을 떠나는 내용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릴 때 하던 야구를 그만두고 삼류대학에 들어가 졸업장을 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졸업하고도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한다. 결국 체육교사 임용시험에 도전해 보는데 합격의 길은 요원해 보이고 부모님의 등골만 빨아먹는 불효자식이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대충 끄적끄적거리던 소설 한 편을 공모전에 출품하는데 덜컥 중편소설상을 받게 되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지만 그 이후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또 다른 주인공, 섀클턴 박사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자 동성애자다. 섀클턴 박사가 학교를 다니던 1950년대에는 장애인이란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죄를 지은 자였고, 게다가 대학에서는 자신을 도와주던 동료 남학생을 사랑하게 된다. 동성애자이자 장애인인 섀클턴 박사는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존경받는 경제학자가 되지만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다 진보와 보수 양쪽 편에서 공격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다 한국의 IMF 관련 학회에 참석한 후 한국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결국 한국에 눌러앉게 된다.



이 소설의 메인 스토리는 목표도 꿈도 없이 자신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과, 적지 않은 나이에도 자신이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섀클턴 박사가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이유로 남극 탐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둘은 남극으로 떠나 탐험을 하고 돌아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고 남극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들은 말하는 곰 치피를 만나고 날아다니는 황제펭귄에게서 펭귄 밀크를 얻어먹으며 남극을 탐험한다. 그게 끝이다. 평범한 한국 청년인 주인공과 장애인이자 동성애자이자 경제학자인 섀클턴 박사가 갑자기 남극으로 떠나 탐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야기.



어떻게 보면 뻔하고,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필자의 마음 한 구석이 움직였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누구나 현실 속의 판타지와 일탈을 꿈꾸고 누구나 자신이 가야 할 길과 목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현대인들의 그 불안감과 무력감을 정확히 건드린다. 현실에 묶여서, 상황이 안돼서, 돈이 없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들을 미루고 있다.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로라를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국 횡단을 하고 싶은 사람이나 케냐의 국립공원에서 코끼리와 함께 지는 석양을 보고 싶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모든 것을 미래를 위해 포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남극을 가고 싶기에 지금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털어서 남극으로 떠나고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현실 속에 뛰어들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걷는다.



현실에 지치고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가 아니기에 어디로 가라, 이렇게 해라 이정표를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평범한 한국 청년과 앞을 보지 못하는 영국 할아버지가 자신의 길을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여정을 보는 것만으로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갈 약간의 힘과 조금의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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