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물론이고 책 표지의 일러스트도 참 귀엽다. 핑크색 표지에 누가 봐도 대 가족의 일원인 캐릭터들이 대충 물감으로 문지른 듯 그려져 있다. 책 내용도 딱 그렇다. 어쩌다 만들어진 대가족에 적응하기 위한 인물들의 고군분투 성장기라고 해야 할까. 미소가 지어지는 통통 튀는 문체로 쓰인 소설이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여러 이야기는 한국의 현실과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다. 가볍게 읽기에도 좋고 생각하며 읽기에도 좋은 소설이다.
치과 의사인 히다 류타로와 그의 아내 히다 하루토는 슬하에 일남 이녀를 두고 있다. 두 딸들은 이미 장성하여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고 그들의 유일한 고민거리는 서른이 넘었지만 독립할 생각이 없는 아들 가쓰로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딸 이쓰코의 남편 소스케가 사업에 연달아 실패하면서 이쓰코는 소스케와 아들 사토루를 데리고 부모님을 찾아온다. 친정에서 소스케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잠시만 살게 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류타로와 하루토 부부의 집에 새로운 구성원이 추가된다. 그렇게 늘어난 가족 수에 적응할 새도 없이 둘째 딸 도모에가 남편과 이혼하고 배가 부른 채로 집에 찾아와 잠시만 집에서 묵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류타로와 하루토 부부가 살던 집에는 첫째 딸 이쓰코네 가족, 둘째 딸 도모에 그리고 막내아들 가쓰로까지 모든 가족 구성원이 모여 복작거리는 생활을 하게 된다.
갑자기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수많은 문제들이 터진다. 이쓰코네 아들 사토루는 전학 온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을 하더니 창고에 틀어 박히기 시작한다. 이쓰코도 사토루의 반항과 변한 남편 소스케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도모에는 미래도 보이지 않는 신인 개그맨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낳겠다고 하며 하루토의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이쓰코의 남편 소스케는 사업 실패에서 도저히 재기할 길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전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가쓰로가 오히려 전과 다름없이 조용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수많은 문제를 끌어안은 가족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때로는 투닥거리며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온다. 어쩔 수 없이 피가 이어진 가족이기 때문일까,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고 어색해하면서도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들의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이 소설은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지만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다. 도모에의 불임으로 인한 이혼과 사토루가 학교에서 겪는 왕따 문제, 방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인 가쓰로와 소스케가 겪는 경제적 문제까지.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도모에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혼한 여성이 겪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마주할 수 있었고 사토루의 이야기에서 왕따 문제의 심각함을 엿볼 수 있었으며 히키코모리인 가쓰로의 이야기에서 그들이 왜 방에서 나오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이 소설은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도모에는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하고 사토루의 반항은 줄어든다. 소스케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중하기 시작하고 가쓰로는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하고 가야노라는 요양사와 결혼해 신혼집을 차린다.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 같은 결말이긴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히다 가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읽는 나까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이 힘들다면 한 번쯤 이 소설을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소설 속 한 문장 :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너희 아빠가 글쎄, 나한테 '함께 패밀리아 펠리체(famiglia felice)를 만들어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