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장강명 작가님의 책을 좋아한다. 문장이 그리 어렵지 않고 진행도 빨라서 일단 서사가 재미있을뿐더러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면 그 뒤에도 계속해서 생각이 이어진다. 읽을 때는 재미있고, 다 읽고 나면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소설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이번에 읽은 호모도미난스도 흥미진진한 스토리 진행에 빠르게 책을 읽어 나갔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혼자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이 소설은 어찌 보면 흔한 SF적 상상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호모사피엔스에서 진화한 새로운 종, 호모도미난스가 생겨나고 호모도미난스는 호모사피엔스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다. 이러한 상상은 이미 영화, 소설, 만화 등등 여러 작품에서 쓰였었고 소재 자체의 흥미성은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러한 작품들과 다른 점은 결론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재를 다룬 몇몇 작품들에서는 결국 새로운 종이 멸종한다거나, 새로운 종이 기존의 인간을 지배한다거나 하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호모사피엔스에서 진화한 여러 호모도미난스들의 각각 확연히 다른 행동들과 사고를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새로운 종, 호모도미난스들에 대한 어떤 결론도 나지 않은 채로 끝이 나버린다. 결국 작가님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SF적 상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상을 소재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 속에는 주인공급의 몇몇 호모도미난스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행동은 다들 제각각이다. 갑자기 가지게 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에 자멸하고 마는 10대 소년도 있고 자신은 이미 호모사피엔스를 뛰어넘는 종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 호모사피엔스들을 거리낌 없이 죽이는 여성도 있으며 그저 그 능력을 가지고 돈, 여자, 명예, 권력만을 추구하며 흥청망청 살아가는 남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라오스의 수행에 정진하는 승려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해탈에 이르게 해 주겠다며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도록 만들어 수많은 승려들을 죽음으로 이끌면서도 자신은 숭고한 목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호모도미난스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를 하는 사람, 호모도미난스 자체가 지구에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등등, 모든 호모도미난스들은 각기 다른 목적, 다른 행동을 보여준다. 과연 이 호모도미난스들 중에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필자는 작가님이 호모도미난스를 통해 남들과 다른 힘을 가지게 된 호모사피엔스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모도미난스들이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남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건 호모사피엔스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청동기시대, 처음으로 철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민족은 다른 민족을 학살하고 지배했을 것이고, 강력한 군사와 기마병을 가졌던 몽골의 칭기즈칸은 주변을 정복해나갔다. 현대에도 돈이라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돈이 없는 자들을 핍박하고 지배하기도 한다. 갑질이라는 용어만 생각해봐도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어떤 힘을 가진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지배하는 일은 먼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호모도미난스는 지금도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존재하고 있다. 사실 호모도미난스란 실제로 호모사피엔스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없는 힘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드는 자들이 바로 호모도미난스, 지배하는 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조건에 관계없이 평등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과연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실제로 인정받고 지켜지고 있는가는 의심스럽다. 돈, 권력, 명예, 외모 등등 많은 것들에 의해 계급이 나눠지고 지배와 피지배가 이뤄지고 있는 사회가 바로 지금의 우리 사회다. 내가 누군가에게 호모도미난스였던 적이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