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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Jul 09. 2019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 / 폴 맥어웬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오랜만에 본 SF 및 스릴러 소설. 생명과학적 지식이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이전에 읽었던 댄 브라운의 오리진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오리진의 미흡한 과학적 기반에 대해 실망하게 만들 만큼 빈틈없는 작가의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사실성과 현실성,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스릴러적 재미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생물병기 담당 부대에 균류 학자로 근무하던 리암 코너는 일본에서 개발하고 있는 균류 생물병기의 대처를 위해 미 해군 함선에 파견된다. 일본군이 개발하던 균류 생물병기 우즈마키(소용돌이)는 이미 완성된 상태였지만 다행히 우즈마키를 몰래 전염시키러 포로로 잡힌 척 한 기타노라는 군인이 균을 퍼뜨리기 직전에 리암 코너가 균이 들어있는 황동 실린더를 뺏으면서 우즈마키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세월 속에 묻히게 된다. 그렇게 64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코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리암 코너가 어느 날 다리 밑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가 우즈마키가 든 황동 실린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누군가가 킬러를 고용해 그에게서 황동 실린더를 뺏으려고 한 것. 그러나 리암 코너는 그 위치를 알리지 않고 오히려 자살을 택하고 그런 리암 코너의 죽음에 망연자실하던 동료 교수 제이크와 그의 손녀이자 균류 학자인 매기, 그리고 그녀의 아들인 딜런에게 리암 코너의 실제 유언이 전해진다. 유언이 가리키는 곳에는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으로 빛나는 곰팡이 세 종류가 숨겨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언이 고작 곰팡이 위치라는 것에 실망하던 그들은 암호 같던 유언 속에 감춰진 진짜 유언을 찾아낸다. 바로 그 곰팡이들의 염기서열이 리암 코너의 진짜 유언이었던 것. 우즈마키를 생물병기로 이용하려는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우즈마키를 찾으려는 정체불명의 킬러 사이에서 절대 생물병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리암 코너의 유언을 받든 제이크와 매기, 딜런이 그의 유언을 따라 우즈마키와 관련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아주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과학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허점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치밀하게 쓰인 SF 소설은 처음 보았다. 곰팡이의 염기 서열 속에 숨겨진 메시지나 생물의 분류 체계의 상위 개념인 계(Kingdom)를 가지고 쓰인 중의적 유언이라니. 게다가 아주 작은 거미 형태의 로봇 크롤러의 묘사나 제작 과정, 이야기 속에서 진행되는 생물학 관련 실험들의 설명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픽션이면서도 과학적으로 백 프로 가능한 일들만을 서술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생명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 오히려 제대로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이 부분은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생명과학 관련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기에 이 소설의 과학적 무결함은 필자가 이야기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코넬 대학교 물리학과에 재직 중인 현 교수였다. 어쩐지 Nerd 냄새가 풀풀 나더라니.) 앞에서 언급한 댄 브라운의 오리진의 경우 소설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과학적 검증이 너무 허술하고 허점이 많아 몰입이 깨졌다면 이 소설은 정반대였다.



그렇다고 서사적인 재미가 떨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사건의 빠른 진행과 속도감이 페이지를 넘기는 걸 멈출 수 없게 만들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731 부대의 이야기나 현재 아시아와 미국에 관련된 국제 정세에 대한 서술은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아시아계 여자 킬러, 오키드와 리암 코너의 유언을 따라 진실을 밝혀내는 매기, 딜런, 제이크의 대립은 선명한 악역과 선역의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이런 명확한 대결구도는 서사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하기 쉬운 플롯이고 약간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 과학적 지식들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시종일관 오키드는 매기, 딜런, 제이크를 위기에 몰아넣고 그때마다 우리는 손에 땀을 쥐며 그 셋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든 의문점은 우즈마키의 치료제에 관련된 부분이었다.(스포일러가 있으니 읽으실 분들은 주의를.) 리암 코너는 죽기 전에 이미 우즈마키의 치료제로 기능할 수 있는 곰팡이를 만들어냈다. 유언장이 가리키는 위치에 숨겨져 있던 형광을 발하는 곰팡이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리암 코너가 왜 그 곰팡이들을 미리 전 세계에 퍼뜨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공기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곰팡이니 그냥 대기 중에 퍼트리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치료제가 있으면 생물병기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일까?(어떤 나라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개발한다면 자국민들에게만 치료제를 복용하게 하고 에볼라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퍼뜨려 생물병기로 이용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리암 코너가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걸 알리지 않고 그냥 대기 중에 퍼뜨린다면 아무도 우즈마키의 치료제가 개발됐다는 걸 알지 못할 것이고 만약 미국이나 중국에서 우즈마키의 치료제를 개발해 우즈마키를 생물병기로 사용한다고 해도 이미 리암 코너가 만든 곰팡이가 전 세계에 퍼져있기에 생물병기로써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리암 코너가 치료제를 개발하고 검증을 마치기 전에 킬러가 찾아와 죽게 됨으로써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 가장 타당한 설명이지만 살짝 논리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워낙 이 소설이 과학적으로 탄탄하기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SF 소설이 갖춰야 할 것들을 모두 갖춘 소설이다. 작가의 탄탄한 과학적 지식 아래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과학적인 허점을 찾아볼 수 없고 서사적인 재미와 속도감도 충분하다. 역사적 사실들이 서술되면서 독자에게 현실감을 느끼게 하고, 악역과 주인공들의 대립구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주인공들이 위기에 처하면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긴장감을 계속 유발한다. 아주 탁월한 SF 스릴러 소설이다.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생명과학 전공 학생으로서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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