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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Jul 11. 2019

단편 : 반반 무 많이

C양은 알람을 5분 간격으로 세 번째 듣고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써 회사에 갈 시간이다. 매번 일어날 때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지만 어쩔 수 있나. 먹고살려면 가야지. 15분 더 자는 바람에 아침에 먹으려고 사놓은 샐러드도 못 먹고 후다닥 준비를 하고 집을 나왔다. 지각은 안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종종걸음으로 지하철로 향한다.


지옥철에서 빠져나와 복잡한 거리를 헤치고 회사에 도착하자 진이 다 빠진다.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 3분 전.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옆자리에는 P양이 이미 출근해 앉아 있다. P양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책상 위에 떡하니 올려져 있는 가죽 가방에 먼저 눈이 간다. 명품 브랜드의 신상 가방이다. 최근에 연예인이 들고 다니는 게 사진에 찍혀서 유명해진 가방이다. P양의 호구 같은 남자 친구가 사다 바친 게 분명하다. P양에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C양의 눈은 고급스러운 상아색 가죽 가방과 자신의 오래된 검은색 가죽 가방을 빠르게 훑는다.


오전 시간, 보고서를 써야 되는데 비몽사몽 한 상태로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다.


“다 같이 요 앞에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부장님의 말에 P양이 입을 가리고 호호 웃으며 좋아요 라고 선수를 친다. 여성스러운 척하는 P양을 보자 짜증이 확 솟구쳐 올라오는 C 양이다.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자들한테 온갖 청순한 척, 약한 척하면서 일을 떠넘기는 걸 볼 때마다 얼마나 열불이 터지는지. 결국 남자 선배들한테 P양이 넘긴 일이 자신에게까지 넘어올 때마다 P양의 뒤통수를 휘갈기고 싶은 적이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다. P양이 꼴 보기 싫어서 똥 씹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C양.


“C양은 오늘 표정이 왜 그래? 오늘…… 설마 그날인가? 허허허.”


저 웃고 있는 부장 놈의 주둥이를 꼬매버리고 싶지만 C양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어색하게 하하 웃는 것뿐이다. 다른 직원들도 어설프게 부장의 웃음에 동조한다. 부장의 뒤를 따라 사람들이 나가자마자 C양은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침을 탁 뱉는다. 


“이 놈의 회사, 내가 언젠가 때려치고 만다.”


회사 앞, 부장이 좋아하는 백반집 좁은 테이블에 다닥다닥 모여 앉았다. 메뉴를 정하는데 고기를 좋아하는 C양은 당연히 갈비탕이다. 웬일로 P양은 비빔밥을 시킨다. 고기가 없으면 밥도 안 먹더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만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메뉴 여섯 개가 눈 깜빡할 사이 나와 테이블 위에 차려진다. P양이 어머 소리를 연신 내며 비비기 힘든 척 연기를 한다. C양 눈에는 훤히 보인다.


“이리 줘봐요 P양. 내가 비벼줄게.”


옆에 있는 호구 남직원의 눈에는 진짜처럼 보였는지 남직원이 열심히 손을 놀려가며 P양의 밥을 비벼준다. 고마워요, 하며 살짝 어깨를 터치하는 P양. 남자 친구도 있으면서 저게 뭐하는 짓인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C 양이다.


“그런데 P양은 고기 들어간 음식 좋아하지 않았나?”


부장이 입 안 음식을 훤히 내보이며 말한다. 밥알 하나가 튀는 건 덤이다. P양은 입을 가리고 호호 웃는다.


“저도 이제 채식하려고요. 살도 빠지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이조잖아요. 게다가 다 같은 생명인데 불쌍하기도 하고요.”


P양은 가식적인 슬픈 표정으로 굳이 C양이 뜯고 있는 갈비를 가리키며 말을 끝낸다. 당황한 C양은 갈비를 입에 문 채 뜯지도 내려놓지도 못한다.


“역시 우리 P양 대단하구먼. 생명을 생각하는 마음도 외모처럼 참 예쁘고 말이야. C양은 평생 채식은 못하겠어? 그렇게 고기를 좋아해서야, 허허.”


“아…. 예. 하하.”


농담이랍시고 던지는 부장의 말에 C양은 어설프게 갈비를 내려놓고 웃는다. 


“어머, 부장님. 그러지 마세요. 고기 먹는 건 개인 기호지, 나쁜 건 아니잖아요. 갈비탕 맛있게 먹어요, C양.”


P양은 C양을 향해 웃으며 부장의 말에 한마디 덧붙인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딱 그 짝이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새로 가죽 가방을 사재 끼는 P양에게 저런 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C양의 속에서는 열불이 터진다. 생명의 소중함은 개뿔. C양은 외려 더 우악스럽게 갈비를 뜯기 시작한다.


6시가 지나 퇴근시간이 되자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P양은 6시 땡 치자마자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미 자리에 없다. 저 살찐 몸이 어떻게 저렇게 빠른지 의문이다. 슬슬 일을 마무리하고 정리를 하려는 C양에게 부장이 다가온다.


“C양, 미안한데 이것만 좀 해줘. 한 30분이면 끝날 거야. 내가 오늘 밤에 일이 있어 가지고 말이야.”


부장이 비실비실 웃으며 기획서를 C양의 책상에 내려놓는다. 이런 썩을. 욕이 튀어나올 뻔 한 걸 가까스로 참고 C양은 억지로 미소를 띠며 말한다.


“네. 제가 해드릴게요.”


“역시 우리 C양밖에 없어. 일도 잘하고 야무지고. 부탁 좀 할게.”


부장이 C양의 어깨를 슥슥 쓰다듬더니 자리로 돌아간다. 부장의 손이 닿은 어깨가 썩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부장 놈, 고작해야 밤에 룸싸롱이나 가려고 저러겠지. 회사에서 야근하고 들어가다 근처 룸싸롱에서 잔뜩 취해서 나오는 부장을 본 적이 한두 번인가. 치사하고 더럽지만 인사 평가가 얼마 남지 않아 어쩔 수가 없다. 부장한테 밉보였다가 인사평가를 개떡 같이 받아 승진을 못 했던 작년 생각만 하면 이가 갈린다. 열불이 뻗치지만 하는 수밖에. C양은 푹 한숨을 내쉬고 껐던 컴퓨터를 다시 켠다. 그 사이 부장은 쏜살같이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C양은 컴퓨터가 켜지는 사이 퇴근하고 집에서 만나기로 했던 D양에게 카톡을 보낸다.


‘야, 미안하다. 부장 놈 땜에 좀 늦게 퇴근할 듯. 내 원룸 비밀번호 알지? 그냥 누르고 들어가 있어.’


개가 펄쩍 뛰면서 OK라고 외치는 이모티콘이 스마트폰 안에서 분주하게 뛰더니 멈춘다. 누가 D양 아니랄까 봐 꼭 지 같이 생긴 이모티콘을 쓰고 있다. C양은 피식 웃더니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워드와 기획서를 번갈아 보며 열심히 문서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6시가 지난 사무실에는 C양과 남직원 둘까지 총 셋 뿐이다. 그마저도 6시 40분쯤 되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10분 뒤 다시 한 명이 회사를 나간다. 사무실에는 혼자 남은 C양이 타닥타닥 자판을 누르는 소리만 울린다. C양의 안경에 비친 컴퓨터 화면에는 계속해서 검은 글씨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길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으아앗!”


C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켠다. 이제야 기획서 작성이 끝났다. 이미 창 밖은 어두워진 지 한참이다. C양은 컴퓨터를 끄고 끼고 있던 이어폰을 뺀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 조용하다. 컴퓨터가 꺼지면서 내는 위잉 소리만 빈 사무실을 채운다. 곧 타닥 소리가 나더니 컴퓨터에서 나는 소리도 사라지고 갑자기 C양은 완벽한 정적 속에 놓인다. C양은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부장이 떠넘긴 기획서나 쓰고 있는 처지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후,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언젠가부터 한숨이 많아졌다. 사실 모르고 있다가 D양이 말해줬을 때에야 깨달았다.


“너 요즘 왜 이렇게 한숨을 많이 쉬어?”


“내가?’


D양의 말에 놀라며 반문했었던 기억이 난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한숨이 잦아졌다는 걸. 그 반문은 한숨이 잦아진 걸 그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D양의 물음이 너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라는 질문으로 번역되어 일부러 외면하고 있던 명치 즈음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이 울린다. D양이 보낸 카톡의 미리보기가 화면에 떴다. 


‘아직 회사?’


시간이 벌써 9시가 넘어간다. 검은 가죽 가방에 짐을 대충 쑤셔 넣고 자리에서 일어난 C양은 사무실 불을 끄고 나간다. 사무실은 어둠 속에 비로소 텅 비었다.


삐, 삐, 삐, 삐. 차라락. C양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 집인 양 바닥에 드러누워 낄낄대며 TV를 보고 있는 D양이 보인다.


“아주 살판났네.”


“어, 왔냐?”


누워 있던 D양과 C양의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가벼운 웃음이 터진다.


“그래, 부장 새끼 때문에 이제야 퇴근했다. 내가 드러워서 진짜 회사를 때려치던가 해야지.”


C양이 가방을 대충 던지고 식탁 의자에 주저앉자 D양도 슬금슬금 일어나 맞은편에 앉는다.


“고생이 많다, 짜식.”


D양이 C양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다. D양이 식탁에 앉은 채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린다.


“짜증 나는 게 부장 새끼 하나면 내가 말을 안 한다. P, 그 년은 진짜 뒤통수 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D양은 돌아가는 TV 채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묻는다.


“왜, 뭔 일 있었어?”


“그 미친년이 오늘 점심 먹는 데 지 채식한다고 하더니 내가 뜯고 있는 갈비 가리키면서 생명은 소중하잖아요, 이 딴 소리 하고 앉았더라. 고기면 환장하는 년이. 그래 놓고 오늘 또 새로 가죽 가방 사 왔더라. 생명이 소중하다는 년이 그렇게 가죽 가방을 사재끼냐? 진짜 돼지들은 상종할 게 못 돼.”


“와 고 년 지능적이네. 내 주변 돼지 친구들은 다 괜찮던데 그 년은 상또라이네. 상또라이.”


D양이 말하느라 채널 돌리기를 멈춘 사이 TV 뉴스에서는 공장식 인간 사육에 대한 보도가 나온다. C양이 말한다.


“저거 봐봐, 인간들 저렇게 사육해가지고 고기로 만드나, 가죽 벗겨서 가방으로 만드나 죽는 건 마찬가진데 무슨 채식만 하면 인간들 생명이 보장되나? 그럴 거면 인간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나 인간 실험 통과한 화장품이나 다 하나도 쓰면 안 되지, 다 쳐 쓰면서 인간권 운운하는 P 같은 년들 보면 짜증 나 가지고. 그러면서 육식하는 동물들 싸잡아서 생명의 소중함을 모른다느니, 뭐니 하는 거 보면 어휴. 그래도 우리 닭들 중에는 그런 닭 없어서 다행이야.”


D양이 덧붙인다.


“야, 우리 개들도 마찬가지야. 우리 개들은 인간 고기는 먹어도 인간 가죽 제품 같은 건 거의 안 쓴다고. 고기를 먹더라도 차라리 인간 실험 화장품이나 가죽 제품들 안 쓰는 게 인간들한테 훨씬 도움될 거다.”


“그니까, 그 돼지년 그렇게 얘기하면서 내숭 떠는 거 보면 내가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게다가 오늘 가방 보니까 상아색 가죽 가방이더만. 그거 그 색깔 가죽 얻으려고 억지로 피부색 다른 인간들 교배시켜서 만든 거잖아. 그게 잔인하냐, 차라리 깔끔하게 도축해서 고기 먹는 게 잔인하냐? 그게 동물이 할 짓이냐.”


D양은 다시 TV 채널을 돌리면서 말한다.


“그니까 말이다. 니가 아주 고생이 많다. 야, 그나저나 배 안 고프냐?”


지금도 열불이 뻗치는지 C양은 부리를 딱딱 부딪힌다. 벼슬도 살짝 서 있는 것이 꽤나 화가 많이 났다.


“P 년이랑 부장 놈 얘기하니까 빡치네. 안 되겠다. 우리 인간 튀김이나 시켜 먹을까.”


D양이 맞장구친다.


“오, 좋아 좋아. 안 그래도 엄청 배고팠다고. 맥주도 같이 시켜봐.”


검은 가죽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려던 C양이 멈칫한다. 그래도 이 검은 가죽 가방은 그냥 흑인 가죽이지 억지로 교배시켜서 만든 건 아니니까. 자기 합리화를 끝낸 C양은 마음 편하게 흑인 가죽 가방을 열어 스마트폰을 꺼낸다. C양이 익숙하게 번호를 찍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네, 두마리 인간 왕튀김입니다.”


“네, 아저씨. 여기 예원 빌라 301호인데요, 인간 튀김 기본이랑 매운맛 반반 되죠?”


“네, 됩니다.”


“그럼 그렇게 반반이랑 맥주도 두 통 갖다 주세요. 아, 무도 많이 주세요!”


“네, 반반에 맥주 두통, 그리고 무 많이요.”


“네, 빨리 갖다 주세요.”


C양이 전화기에서 귀를 떼기 직전,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인간 튀김 반반, 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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