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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Jul 31. 2019

회색 인간

'회색 인간' / 김동식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회색 인간'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이다. 2만 자 정도 되는 단편 소설보다도 더 짧은 엽편 혹은 장편(掌篇)이라고 불리는 길이의 소설들이 들어있는 작품이다.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마치 현대판 이솝 우화를 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회색 인간 속에 담긴 소설들은 읽을 때는 재미있게 심지어는 낄낄대며 읽는데도 다 읽고 나면 뭔지 모를 찝찝함과 쓴 맛이 남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엿본 것이 아닐까.


'회색 인간' 속에 담긴 모든 소설들을 필자는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그 모든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해서 필자가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 몇 개를 추려 그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으니 '회색 인간'을 읽으실 분들은 책을 읽고 나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1. 아웃팅


아웃팅은 인간과 인조인간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인조인간들조차도 자신이 인조인간인지 모른다. 만약 큰 사고가 나 다쳤는데도 통증이 없어 인조인간인 게 밝혀지게 되면 아웃팅을 당해 인간들에게 차별을 받게 된다. 하지만 결국 결말에서 모든 인간들이 사실 인조인간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마 이야기가 끝난다.


아웃팅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읽자마자 성소수자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는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남들과 다른 숨기고 싶은, 밝혀지면 주변인에게 경멸과 차별의 시선을 받을 수도 있는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특이한 성적 페티시나 안 좋은 집안 사정일 수도 있고 앓고 있는 지병이라던가 앞에서 말했듯 자신만의 성적 취향도 그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요인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무결점의 사람이 있을까? 필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사실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 경멸받고 차별당하던 인조인간이었다는 결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2. 돈독 오른 예언가


돈독 오른 예언가는 인명 사고를 예측할 수 있는 예언가의 이야기이다. 그 예언가는 인명 피해를 줄여주는 대신 국가에게 자신이 구한 사람 한 명당 천만 원의 돈을 달라고 말한다. 정부는 그 제안을 허락하지만 예언가가 거짓말을 하는지 어떻게 아냐, 너무 쉽게 돈을 버는 거 아니냐 라는 의견이 국민들 사이에서 점점 커지고 결국 정부는 예언가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게 된 사람이 직접 천만 원을 예언가에게 지불하라고 하며 예언가와의 거래를 철회한다. 그러나 예언가에 의해 생명을 구한 사람들 중 돈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돈을 받지 못하자 예언자는 침묵한다. 그러다 결국 예언자는 자신이 구한 사람 한 명당 삼천만 원을 주겠다는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필자는 이공계 계열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필자는 이 소설을 보면서 한국 이공계의 두뇌가 외국으로 유출된다고 말하는 수많은 기사들이 떠올랐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에 나오는 예언가가 미국으로 간 이유와 똑같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당한 대가라는 수준이 소설 속 예언가처럼 한 달에 몇십억씩 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의 금전적 대가, 그리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그런 자리도 부족하고 지원도 부족하며 환경과 인프라도 부족하다. 석사 학위를 지닌 연구원을 뽑는 자리에 박사 학위를 지닌 사람까지 몰려드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 상황이다. 그런데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훨씬 좋은 금전적 대가와 조건, 환경으로 자신을 채용한다고 하는데 굳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외국으로 나가는 인재들의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질책보다 우리나라 이공계 연구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왜 외국으로 나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분석과 이성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필자만 해도 비슷한 조건의 자리가 외국과 한국 양쪽에서 난다면 굳이 외국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가족, 연인, 친구들이 있는 한국을 떠나서 더 좋지도 않은 일자리를 얻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3.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


외계인이 주고 간 선물, 영원의 구. 이 구만 있으면 지구의 모든 인간들은 나이를 먹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 10살 전후의 나이로 멈춰 있는 김남우와 공치열은 어떻게든 영원의 구 사용을 중지하고 나이를 먹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영원의 구 사용 찬반 투표는 늘 찬성이 더 높고 그에 절망한 김남우와 공치열은 결국 영원의 구를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온갖 감시와 경계를 뚫고 결국 영원의 구를 파괴한 김남우와 공치열.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 영원의 구는 애초부터 없었고 나이를 먹지 않는 저주는 외계인을 납치하고 기술을 캐내려 한 정부 때문에 외계인이 인류에게 내린 것이었다. 영원의 구는 그저 정부의 잘못을 가리기 위한 조작이었던 것이다.


이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은 재작년 박근혜의 탄핵을 이끌어 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이나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 등, 정부가 국민을 속인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란 국민의 권력을 이양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역사에서 정부는 수없이 국민들을 속이고 농락해 왔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굵직한 일들만 해도 엄청나다 (앞에서 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사오입 개헌 외에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 세월호 사건 수사 과정에서의 의문점 등등). 그래서 우리는 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며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잘못된 정부에 대해 국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회색 인간'은 일단 재밌다. 술술 읽히고 신선하고 새로운 서사와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현대 사회의 단면들을 우화적으로 풍자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읽고 나서 묵직한 생각들이 남는 소설집이다. 필자는 조만간 김동식 작가의 다른 소설집도 꼭 읽을 생각이다.


소설 속 한 문장 : "저는 오늘, 전 인류를 아웃팅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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