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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Aug 02. 2019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 윤고은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라는 제목이 참 매력적이다. 제목만 들어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다. 털털거리며 엔진이 돌아가는 늙은 차와 그 차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이름 모를 히치하이커. 그 때문이었는지 이 소설집은 마치 히치하이킹을 하듯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통통 튀는 소설들이 들어있었다.


이 소설집에는 총 8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된장이 된, 불타는 작품, 전설적인 존재, Y-ray, 책상, 다옥정 7번지, 오두막,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이 8편의 단편이 끝나면 그 뒤에 윤고은 작가와 정소현 작가의 대담이 실려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상상력이다. 작가의 특이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이 소설마다 펼쳐지는데 윤고은 작가의 뻔뻔한 문장들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묘하게 넘나드는 인물이나 사건들을 보면 왠지 이 지구 어딘가에서는 진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 같다고 믿어버리게 된다.(심지어 말하는 개나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 여행을 한 소설가 이야기도 이 넓은 지구 어디쯤에서는 일어날 수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렇게 뻔뻔하고 아무렇지 않게 독자를 자신의 상상 속으로 끌어들여 이리저리 휘두르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들이 그냥 재밌는 상상으로 끝나냐 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상상 속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현실의 어느 부분들을 툭툭 건드리는데 그게 꽤나 아프다. 현대의 인간이란 얼마나 자신 안에 갇혀 있으며 자신이 아는 범위 안의 것만 믿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하고(다옥정 7번지),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인한 방관과 외면이 적극적 가해와 과연 다른가를 고민해보게 하기도 하고(오두막), 사람 사이의 차별과 인간이 가지는 믿음의 의미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Y-ray). 읽을 때는 신나고 재미있게, 읽고 나서는 생각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좋은 소설집이다.


필자가 8편의 단편 중 가장 맘에 들었던 소설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였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늙은 차를 타고 동행하게 된 두 사람이 세상의 중심인 울룰루로 향하는 내용이다. 우연히 같은 차를 타게 된 둘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우연을 발견한다. 그리고 늙은 차는 울룰루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 버린다. 운전하던 남자는 차에서 내려 여자에게 말한다. "니나, 동행해줘서 고맙네." 물론 여자의 이름은 니나가 아니다.


소설집 맨 뒤에 실려 있는 윤고은 작가와 정소현 작가의 대담도 넘기지 말고 읽어주기를 바란다. 소설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사실 이 소설집의 백미가 대담이 아닐까.)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매력적인 제목이다. 책을 읽기에 제목이 마음에 든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다. 전혀 모르는 책을 제목만 보고 집어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책이 좋은 제목만큼이나 좋은 책일 때 그 순간은 온전한 독자의 행복이다. 적어도 나는 그 행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소설 속 문장 :


"니나, 동행해줘서 고맙네."

"니나가 아니라니까요."

"어쨌거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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