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 / 선유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가시리라는 고려 속요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지만 저 유명한 가사는 알고 있다. 가십니까 가실겁니까 나를 버리고 가실겁니까. 먼 옛날, 고려 시대의 어떤 이가 그토록 애절하게 누군가를 부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은 가시리를 부른 이는 누구였을까에서 출발한 이야기이다.
강화도에서 살고 있는 세 소꿉친구 아청, 좌, 우. 아청은 고려에서 가장 유명한 가인이고 좌와 우는 각각 삼별초의 좌별초와 우별초에 들었다가 지금은 삼별초의 신의군에 있는 군인이다. 삼별초는 고려를 속국화하려는 제국에 맞서는 군인 집단으로 좌와 우에게 개경에 있는 제국의 대신, 북을 암살하라고 명령한다. 둘은 암살에는 성공하지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가 3년 만에 풀려나 강화도로 돌아온다. 하지만 북의 아들 남이 다시 제국의 대신으로써 개경으로 오고 제국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지 않는 한 강화도는 곧 제국군의 침략을 당할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다. 여기서 좌와 우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좌는 끝까지 제국의 야욕에 저항해야 한다며 진도로 옮겨가 항쟁을 계속하자고 말하고 우는 제국의 힘은 너무 거대하므로 그 밑으로 들어가 평화를 도모하자고 말한다. 아청은 좌와 우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한쪽을 택한다. 거기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일단 소설의 소재 자체가 흥미로웠다. 청산별곡, 한림별곡, 가시리 등 우리가 많이 들어 본 제목을 가진 고려 시대 노래들을 소재로 고려시대 가인과 삼별초 무관 둘의 삼각관계를 풀어내는 이야기라니,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가 당시의 역사, 노래에 대해서 많은 조사와 연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삼별초 항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항쟁의 실제 사건들은 놓치지 않으면서 그 안의 빈 부분들에 대해 개연성 있는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 좋았다. 삼별초의 군인들 중에서 항쟁에 참여해 진도로 향한 군인들도 있었겠지만 당연히 제국의 힘에 굴복하는 인원도 있었을 것이고 친우였던 두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한 여성과의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설정 자체가 역사적 사실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보통 역사 소설을 쓴다고 하면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상상력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둘 모두를 적절히 섞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낸 셈이다.
노래를 소재로 한 소설이니만큼 아청의 노래가 제국과 고려의 전쟁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서술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제국의 군선에 선 아청이 진도에 있는 삼별초의 군인들에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밤마다 울려 퍼지는 아청의 노래를 들은 삼별초의 군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이 제국에 투항한다. 굳은 의지로 진도라는 좁은 섬에서 항쟁하고 있던 군인들도 고려 땅에서 들려오는 고려의 노래에 흔들리고 만 것이다. 오랫동안 밟지 못한 고려의 땅과 산과 들, 두고 온 가족들, 친구들, 고려의 강과 물소리와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 이 모든 것들이 노래를 통해 밀려와 그들을 흔들었을 것이다. 사면초가가 생각나는 장면이기도 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과연 전쟁이라는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큰 인간에 의한 절망 속에서 노래, 즉 예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고, 평범한 삶을 잃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란, 좋은 글이란, 훌륭한 그림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애초에 인간의 삶에 있어서 예술이 사치가 아닐까? 예술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예술이 없어도 인간은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는가?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예술이란 사치다. 예술을 즐길 시간에 돈을 벌어야 굶어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술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 소설에서는 조금은 낭만적이고 사실이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는 해답을 준다. 아청은 제국군이든 고려군이든 상관없이 전쟁에 지친 이들에게, 창칼에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전우를 빼앗긴 이들에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한 줌의 희망을, 위로를, 기쁨을, 웃음을 주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그리고 예술은 전쟁을 막을 수 없고 전쟁으로 목숨을 잃는 자들을 구할 수는 없지만 거기서 살아남은 이들이 절망 속에서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도록 위로와 희망을 전하기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역사 로맨스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데 생각보다 더 좋은 소설이었다. 재미있는 내용은 물론이고 삼별초 항쟁이라는 국사 책에서만 보았던 단어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도 만들어주었다. 약간 아쉬운 것이 있다면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에서 조금 더 역사 소설의 느낌을 살렸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대화, 특히 아청과 좌, 우의 대화에서 너무 현대인들의 대화 같은 부분이 많아 아쉬웠다. 물론 필자는 아쉬웠지만 다른 독자들은 오히려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만한 부분이다. 삼별초 항쟁이라는 역사책 속 단어에, 가시리라는 국어책 속 제목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소설 속 한 문장
살아야 살아야 했을 것을
청산에 살아야 했을 것을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아야 했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