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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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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Feb 26. 2022

부지런한 진짜 이유

 "너 그러다 진짜 소 된다!"


© tumtac, 출처 Pixabay


‘귀찮음’이 사람 형태를 하고 있다면 그건 단연코 나일 것이다. 나는 누워있는 걸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 머릿속에 자석이 달린 것도 아닌데 바닥은 늘 날 끌어당겨 기어코 눕게 만든다. 수면을 제외하고 바닥에 등을 대지 않는 가족들 틈에서 나는 고집스레 살아남았다. 새벽부터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여는 아빠를 피해 이불을 돌돌 말아 이방 저 방 도망 다녔고, 엄마가 청소기를 돌리면 데구루루 굴러 청소기 지날 자리를 만들었다. 얼굴이 노랗게 뜨고 머리가 아파질 때까지 누워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누워있는 건 행복 그 자체였다.


따지고 보면 나의 취미도 다 이런 ‘와상’에 기인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독서는 내 와상 생활의 지루함을 달래주었던 유일한 활동이었다. 따뜻한 이불 아래 얼굴과 손만 내밀고도 세계 여기저기를 누빌 수 있는 일. 이 얼마나 천국 같은 시간이던가.


이런 성격에 육아는 정말 극한의 도전이었다. 억지로 현생을 살아내며 부지런해졌지만 이 천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육아도 누워하려 애썼다. 누워서 책을 읽어주었고, 엎드려서 그림을 그려줬다. 그리고 다시 누워 발로 비행기를 태우며 놀아주었다. 누워서 놀아줄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이었던 책과 그림은 다행히도 아이들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매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부지런함도 사실은 부지런함이 아니라 책이 있어야 아이들이 놀아달라 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일이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한다. 내가 하는 일에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건 한껏 게으르고 싶어 하는 나의 욕망일 것이다.


이런 나의 어릴 적 장래희망은 ‘돌’이었다. 어디 가지 않아도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 돌이 너무 부러웠다. 귀찮은 일 없이 사람 구경하며 상상하며 그저 가만있는 돌이라. 너무 이상적이지 않는가.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나는 먼지를 꿈꾸던 아이와 절친이 되었다. 누가 ‘후~’ 불면 ‘~후’ 분 곳으로 굴러가는 먼지를 상상하던 내 친구. 나는 이 친구와 세계일주를 했다. 여행 중 어느 나무 아래 쉬어가던 때가 있었다. 친구는 흙길 한가운데 짱 박혀 있던 돌을 보고 “저기 너 있다~!” 했고, 나는 민들레 씨가 한데 뭉쳐 통통 움직이는 걸 보고 “저기 너도 있다~”했다. 우리는 그 나무 아래서 한참을 깔깔댔다. 그리고 엉덩이 먼지를 툴툴 털고 귀찮은 여행을 이어갔다


오늘도 난 조금이라도 더 눕기 위해 일상을 살아낸다. 아침에 부엌으로 출근하는 순간 나는 비장해진다. 짧은 시간 안에 요리를 끝내고자 하는 나는 몸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계산이 끝나면 한 번에 화구 3개를 모두 사용해 점심준비까지 해치운다. 덕분에 부엌은 전쟁통이다. 바쁜 손을 대신해 발까지 합세한다. 뒷발로 냉장고 문을 닫고 앞발로 서랍장을 닫아내며 요란법석 난리 버거지다. 국이 끓는 잠시를 못 참고 빨래를 모아 세탁기에 넣고, 볶기 시작한 양파가 갈색이 될 때까지를 못 기다려 막간 청소기 돌리기를 한다. 일을 이렇게 급하게 하다 보니 손도 다치고 발도 다치는 일이 많다. 다치고 나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도대체 누워있는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말이다. 어쩌면 나의 급한 성격도 모두 누워있기 위해 얻어진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빨리 처리하는 건 어서 누워 쉬기 위한 내 큰 그림이다.


내가 좋아하는 동화작가 사노 요코 씨가 있다. “죽는 게 뭐라고”,”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의 저자인 할머니는 나만큼 삶을 귀찮아한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 DVD를 빌려 소파에 누워 목이 상하도록 돌려본다. 어쩌면. 내 노년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게을러 어디 내놓기 창피했던 내 마음이 이 책으로 위로받는다.


내 부지런함은 극강의 게으름에 닿아있다. 나는 매일 빤질빤질한 바지런 가면을 쓰고 조금 더 누워있기 위한 꼼수를 짜내고 있다. 누가 알겠는가. 이런 내 마음을.


일어나기 싫은 아침의 침대에서 외쳐본다.

“기다려라! 세상 평온함을 모두 모은 나의 침대여. 내가 간다! 사랑스러운 소파여. 내가 곧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빠르게 너희에게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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