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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Feb 27. 2022

'개' 같은 성격

아이 유치원 첫 등원 날이다. 차량을 기다리는데 유치원 엄마들이 듬성듬성 서있다. 울산으로 이사와 한 달 동안 아이와만 지냈다. 어른과 대화한 건 남편이 유일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어른에 나는 금세 흥분했다. 반갑게 엄마들에게 인사한다. 엄마들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개의치 않는다. 그저 첫날이라 다들 쑥스럽나 보다 생각한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사람들이 반갑다. 경비아저씨도 반갑고 어제 본 엄마들도 새로이 반갑다.


나중에 친해진 이곳 친구들에게 들으니, 내가 아침마다 기분이 너무 좋아 보여서 궁금할 정도였다 한다. 이곳은 무뚝뚝한 경향이  곳이었다. 모두가 그런 분위기였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초면부터 촐랑 였던 것이다. 새삼스레  눈치 없음에 놀라고 있을  친구는 먼저 다가와줘 고마웠다고 말해 주었다. 덕분에 사람들과 빨리 친해질  있었다고 말이다

유일한 서울 말씨를 쓰는 나는 그렇게 얼렁뚱땅 지역 일원이 되었다. 진입장벽이 높았던 사람들은 마음을 여니 바다같이 넓어졌다. 친구들은 친정에서 받아온 반찬을 나눴다. 콩잎 장아찌, 우뭇가사리 콩국, 섞박지 등등. 덕분에 나는 지역음식을 종류별로 맛볼 수 있었다. 방앗간 집 친구에게는 참기름과 깨를 받았고, 친정이 과수원 한다던 동생에게 과일도 철철이 받았다. 힘든 격리생활 중에는 집 앞에 커피와 아이들 놀거리들이 매일같이 놓여있었다. 이사 가는 날. 주차장까지 와 이별을 슬퍼하며 울어준 것도 그들이었다. 시작은 눈치 없는 나였겠지만, 끝은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사람 관계는 매번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경계심을 어디다 팔아놨는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가기도 전에 이미 표정이 앞선다. 반가움에 웃음이 먼저 새 나간다. 어색함은 다음 문제다.


나는 사람 볼 줄을 모른다. 비꼬거나 떠보면서 상대 심리 파악하는 것도 못한다. 첫 만남부터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100%로 확신하고 들어간다. 어디서 이런 믿음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시작하는 나의 인간관계는 실망으로 끝나는 일이 허다하다. 알고 지낸 시간이 많이 흘러 문득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이면, 난 무안해진다. 큰 사기 없이 살아온 게 천운이다 싶다. 다행인 건 촉 좋은 이들이 내 옆에 있어줬다. 친구들이 그랬고 남편이 그랬다. 특히 남편은 사람 파악을 쉽게 한다. 난 늘 믿지 않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남편 말이 옳았음을 경험한다. 늘 다짐하지만 결국 이 패턴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마음속에 사람에 대한 미움이 들 때도 있다. 싸움 못하는 나는 남편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면 시나리오를 써둘 때가 있다. 출근하고부터 거창하게 연습했건만  퇴근한 신랑 얼굴을 보면 바보 같은 반가움이 앞서간다. 조리 있게 화내고자 연습한 내 대본은 이번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싫어했던 사람들도 막상 만나면 (슬쩍) 반가운 마음이 고개를 든다. 한마디 따뜻한 말에 내 마음은 스르르 녹고 어느새 꼬리가 살랑이고 만다. 이런 내가 싫지만 이 “개"같은 성격은 고쳐지질 않는다. 꼬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한다.


© joeyc, 출처 Unsplash





첫째 아이는 동네 엄마들이 인정한 스몰토크의 장인이다. 아이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상 이야기며 요즘 관심사며 대화거리를 찾아낸다. 첫째가 외출 중이면 엄마들 목격담이 끊이질 않는다.

“ㅇㅇ이 옆 단지 경비아저씨랑 이야기 중이던데요?” 타 아파트까지 접수하고

“언니~ 오늘 늦잠 잤어요? 아침 늦게 줘서 허겁지겁 먹었다던데요?” 사생활 노출은 기본이다

“ㅇㅇ이 골목에서 고양이랑 야옹 거리고 있어요~” 반가움의 대상엔 인간만이 전부는 아닌 듯하다.



어쩔 것인가. 성격도 유전이라면 이건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큰 개로. 너는 작은 강아지로. 반가움에 꼬리를 흔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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