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티카카 Mar 09. 2022

봄날의 김치



아이를 가졌을  5개월 동안 몸에 변화가 없었다. 1kg 몸이  않아서 산부인과에서 걱정을 했다. 선배들은 일생의 기회라며 먹고 싶은  남편에게 말하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먹고 싶은  없었다. 그저 잠이 왔다.  당시 근무시간은 9 반부터 5시까지였다. 퇴근  집에 돌아와 6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잠만 잤다.  인생에 제일 꿀잠 잤던 시기다. 남들처럼 토하는 입덧은 없었다. 전기밥솥에서 올라오는 증기 냄새가 역하긴 했지만 일상생활을 방해할 만큼 힘든  아니었다. 그저 입맛이 없었다. 아기 걱정에 억지로 먹을 뿐이었다.  당시 청과물시장 근처에 살아서 남편은 퇴근길에 과일을  박스씩  오곤 했다. 사온 과일만 생쥐처럼 조금씩 파먹었다. 소식을 들은 엄마가 반찬을 이것저것 해오셨다. 정성을 생각해서 먹어야 했지만 냉장고로 들어간 반찬은 다시 꺼내기도 싫었다. 6 반상을 차려 놓고 남편만 호강했다.


봄이 왔다. 임신 22주 차였나. 엄마가 파김치를 가져오신다 했다. “파김치!” 듣자마자 식욕이 인다. 갑자기 침이 고여 귀 뒤가 찌릿 거린다. 시계를 자꾸 보며 퇴근시간만 기다렸다. 6시 퇴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회사를 나선다. 4개월 넘게 꼬르륵거리지 않았던 배안에서 밥 달라 아우성이다. 뛰면 안 된다 주문을 걸지만 종종 거리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집이다. 문밖으로 밥 냄새가 났다. 허겁지겁 들어가 식탁에 앉았다. 가방을 아무렇 게나 던져두고 숟가락을 잡는다. 꽃게 된장국이 식탁에 올 새도 없다. 하얀 쌀밥에 파김치를 턱 얹어 입에 넣는다. 알싸한 향이 퍼진다. 밥이 꿀떡 넘어간다. 크게 자른 김에 밥을 싸서 입에 넣는다. 입에 공간이 생길 때쯤 파김치를 구겨 넣는다. 엄마는 말도 못 붙이고 반찬 접시를 내 앞으로 놓아주신다. 다른 건 여전히 먹고 싶지 않다. 그저 파김치. 이거 하나면 된다. 씁쓸하고 단 파에 양념이 섞여 입에 착착 감긴다. 몇 달 만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둘째가 생겼을 때도 같았다. 그때도 내 입맛을 돌려줬던 건 파김치였다.




첫아이는 이제 10살이다. 엄마는 올해도 파김치를 담그며 예전 이야기를 꺼내신다. 이건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먹으라 하시며 웃으신다. 파김치를 받는 날은 고기를 굽는다. 평소에는 귀찮아 점심을 먹지 않지만 파김치가 있다면 다르다. 고기에 파김치를 돌돌 말아먹는다. 이제 입맛을 쫓아야 하는 몸무게가 되었지만, 걱정을 뒤로하고 마음껏 먹어본다. 아이들은 엄마 입에서 고약한 냄새난다며 코를 막을 것이다. 그래도 봄이면 역시 이 김치를 먹어줘야 한다. 씁. 쓰면서 침이 고인다. 내일 점심 파김치를 먹어야겠다. 두근두근. 혼자만의 만찬을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 같은 성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