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창문
얼마 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서는 창문이 꽤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한다. 부잣집의 창문에 내리는 비는 운치 있어 보이고 같은 시간 가난한 집의 창문에 내리는 비는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를 모두 잠식 시켜버리는 식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진하게 남았던 감상은 창문에 관한 것인데, 나는 창문에 꽤나 집착하는 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몇 번 집을 구해보면 누구든 금방 느끼겠지만 원룸은 대체로 예의가 없다. 아마 원룸을 지으면서 여기에 거주할 사람의 편의보다는 얼마나 월세를 받아먹을 수 있을까를 더 크게 고려한 결과물로 보인다. 응당 집이라고 부르려면 필요한 몇 가지를 방 한 칸에 다 몰아놓고 '깔끔하다' '넓게 나왔다'라며 괜찮은 집이라고 소개하지만 집주인도 부동산도 나도 그걸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집을 구할 때 체크해야 하는 몇 가지 조건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신경 쓰는 조건은 창문이다. 집의 예의 없음을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작거나 너무 높고 낮은 애매한 위치가 문제일 때도 있고, 도로가에 노출이 돼서 심각한 소음공해가 문제일 수도 있다. 집안의 사생활이 노출되어 범죄 위험이 높은 것도 문제가 된다. 건물 간의 간격이 너무 좁은 탓에 창문을 열면 바로 앞집이 보인다던가 혹은 벽에 가로막혀 있으나 마나 한 창문일 수도... 이런 창문을 마주할 때 '당신이라면 이런 집에 살겠어요? 본인도 이런 집엔 살기 싫을 거면서 월세만 받으면 된다는 심보가 고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라고 묻고 싶어진다.
'기생충'을 보고 오는 길에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창문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코끼리의 포효에 가까운 버스 소리를 서라운드로 내뿜던 창문1번. 옆건물에서 하루종일 집안을 훔쳐보는 것 같아 시선의 공포에 떨던 창문2번. 앞건물과의 간격이 말도 안되게 좁아서 아침에는 서로의 알람을 듣고 저녁에는 재채기를 번갈아 하는 창문3번. 이 창문들은 나의 선택지에서 고르고 골라 최선을 다 한것이다.
거의 마주하고 있는 창문을 가진 앞집과 나는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1년 내내 블라인드를 내리고 살고 있다. 그러고보니 늘 가려져있는 저걸 창문이라 불러도 좋은가 싶었다. 그렇게 시선은 대충 피해 보더라도 허락 없이 넘어오는 소리는 어쩌지 못한 채 산다. '기생충'에서 속수무책으로 폭우가 밀려들어오던 창문을 짠하게 여겼는데, 사실 내 창문이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묘한 기분을 느끼는 귀갓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