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살아남기.

서로의 존재를 확인 하기.

by 응달


작은 아반떼에 짐을 가득 싣고 서울 자취방으로 엄마 아빠랑 왔던 첫날. 5평 남짓한 작은방에 맞게 챙긴 짐을 대충 정리하고 30cm 간격으로 누워 잠을 자던 그날 밤에 나는 숨을 죽이고 울었다. 자취를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제야 집을 떠나 산다는 게 실감이 났다. 서울에서 울산까지는 ktx를 타야 2시간이고 버스를 타면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사는 건 처음이라 조금 겁이 났다. 유학생들이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을 쥐어짜서 만든 보증금 500만 원이 미안해서도 울었다. 그때쯤에 엄마는 오래된 싱크대를 고치고 싶어 했었지만 아직까지도 고치지 않고 있다.


엄마 아빠도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일주일간 매일 전화해서 첫 직장생활이 어떤지를 계속 물어왔다. 아직까지는 크게 힘든 점이 없다고 평탄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왠지 목이 메어 우는 게 들킬까 봐 어어-. 하는 짧은 답만 하고 얼른 전화를 끊어버리던 일주일이었다. 그때는 업무 중에서도 틈만 생기면 코가 찡해져 급하게 눈물을 말려야 했다.


처음 서울에는 아무 연고도 없었는데 1년 정도가 지나자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 몇 명이 생겼다. 서로의 원룸에 놀러 가서 치킨이나 떡볶이를 시켜 먹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서울에 평생 살 생각이야?" "난 여기서 평생 살아도 내가 서울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꼭 꺼냈다.


직장생활도 몇 년 하니 연휴에 여행 계획을 짜거나 명품 백을 하나 장만하고 결혼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지만, 나는 월급의 반을 월세로 내느라 여윳돈이 거의 없어서 그런 소식들은 별로 와닿지 않았다. 폐지 줍는 할머니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걸.


그래서였는지 그때쯤 팟캐스트나 유튜브, 책에 거의 중독되다 싶이 하루 종일 빠져살았는데, 거기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안면도 없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서 메일을 보냈더니 메일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자신을 대체 왜 좋아해 주냐고 답장이 왔었다.


저랑 비슷한 일상을 보내시는 것 같아서요.

비슷한 시간을 견뎌내는 우리를 응원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나도 인터넷에 글 한 편 남겨봐야지 결심했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가지만 글 한 편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또 새로운 형식의 친구가 되어 줄지도 모르지.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집안으로 날아들어온 나방을 혼자 처치해야 하는, 배달음식을 시키면 남아버리는, 그만큼 자유로우면서도 겁나는 나날들. 막막한 우리의 인생에 안녕을 빌며. 서울에서 잘 살아남아 보자.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