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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있게멋있게 Aug 15. 2023

건강을 잃다

‘잘’ 하는 건 없어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너에게


2021년 4월.


"맛멋아, 너 그거 놔두면 큰일 나는데"


바빴던 법인세 신고 기간이 3월 말일자로 끝나고 4월 초 지인들과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 사실 그 해 1월부터 나는 평소와 달리 발과 다리가 심각하게 붓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느꼈다. 인터넷에서 파는 압박 스타킹을 구입해서 신고 다닌 지도 한 달 째였다. 그저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가 보다. 시즌 끝나면 괜찮아지겠지~'라며 증상을 무시해 왔다.


그런데 내 지인이 어쩌다 내 발을 보고 뱉은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울며 밤늦게 도착한 곳은 근처에 위치한 응급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그렇게 오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증상을 말하고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했다.


"잠깐 기다리세요~"


검사를 하니 어느덧 12시가 넘어버린 새벽의 응급실엔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 등 나보다 긴급해 보이는 사람들과 보호자들로 의자가 꽉 차 있었다. 생각은 많아졌지만 같이 응급실에 가준 지인과 큰 걱정은 하지 않고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린 지 한참이 돼서야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맛멋님, 증상이 혹시 언제부터 나타나셨어요? 소변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그날의 신(scene)은 갑자기 응급실 병동 천장으로 장면을 전환하게 되었다.




 누워있으니 응급실 인턴 선생님 같은 분이 소변검사로 요단백 현상이 발견되었고 알부민 수치가 너무 낮다고 하셨다. 이 알부민의 농도는 간 기능 저하, 신장질환, 영양실조, 염증 등의 경우 감소할 수 있으며 정상범주의 의미를 가지는 참고치는 3.5g/dl 이상이다. 나의 경우 2g/dl 대가 나왔으니 매우 낮은 수치이며 의사 선생님이 영양실조인지 다른 기관의 이상이 생긴 건지 판단을 보류하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다소 젊은 나이에 이렇게 낮은 알부민 수치와 요단백 현상이 나타나는 게 흔한 것은 아니고, 또 내가 일로 한창 바쁜 시즌에 살이 오르는 게 싫어서 제대로 먹지 않고 내 몸을 혹사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알부민?’ 그게 뭔지 당시에 당연히 몰랐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의학 용어 아닌가. 어찌 되었든 소변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전문용어로는 ‘24시간 요단백 정량검사(*)’ 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 24시간 요단백 정량검사란 하루 중 배설이 일정치 않은 호르몬, 단백 및 전해질 등을 정량하고자 할 때 24시간 소변을 수집하는 검사를 말한다. 24시간 동안 모든 소변을 소변 전용 용기에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소변을 모으며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내가 암에 걸린 건가?' 등 부정적인 생각이 여럿 들었다. 응급실에서 첫 소변검사를 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 병원에 오래 있을 줄은 몰랐다. 결국 그 사이 아버지도 연락을 받고 도착하셔서 함께 기다리고 계셨다.


24시간 요단백 정량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신장내과에서 왔다며 본인 소개를 하시며 젊은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검사결과 조직검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청천변력 같은 말이었다.


소변에서 거품이 나온 지 3달째이긴 했지만 이 지경일지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저 잠시 과도한 스트레스와 다이어트를 감행하여 영양실조로 나타난 증상인 줄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조직검사는 암환자가 하는 건 줄 알았는데..


24시간 요단백 정량검사가 끝나고 그날 바로 해당 응급실에서 나와 근처에 위치한 대형병원 신장내과로 진료예약을 잡았다.


그 해 5월 초 조직검사 후 나는 담당의와의 면담에서 앞으로 내 인생에서 동거동락하게 될 생소한 병명을 마주하게 되었다.


면역글로불린 A신증후군, 급성 사구체 신염.


쉽게 말하면 신장에 염증이 생긴 것이었다.




 원인은 모른다. 애초에 원인이 없는 병이라서. 식습관 때문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의 너무 큰 결정을 혼자 짊어졌던 탓도 있던 것 같다.


관악구 빌라로 손해 본 것이 내게 여진을 줬던 걸 수도, 혹은 새로운 부동산 투자처를 급하게 찾느라 너무 고심해서 그럴 수도 있다. 본업으로 가장 바쁜 달인 3월과 수원주택 계약 및 오산 청약 계약 시기가 모두 짧은 간격으로 동시에 진행되었으니 혼자 감당가능한 임계치를 넘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프면 사람은 더 예민해지는데 난 그래서 더 신경질적 이어졌다.


이로 인해 수원집을 더 빨리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는 것 같은 복잡한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싫은 내게 다시 휴리스틱(heuristic)(**)이 발생한 것이다.


(**) 휴리스틱이란 시간이나 정보가 불충분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거나, 굳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사용하는 어림짐작의 기술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잃은 것만 있거나 불행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진출처 : Unsplash의 Andrik Langfield, Unsplash의 Gift Habesh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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