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斷想

낡은 구두

by 김남웅





내가 신은 구두는


험한 세상에 닳고 닳아서

뒤굽 어딘가는 사라졌고

헤지고 상처투성이어서

그 모습이 지리고 긴

삶의 모퉁이 같아서

초라하게 늙어가는 노인이다


비가 오면 비가 새고

비람 불면 바람 들고

눈이 오면 발 끝 시려오는

탑골공원에서 만난

백발이 성하고 허리가 굽은

석양빛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우리 아버지 같은 노인이다


새벽이 흐르는 강을 건너고

바람을 가르며 들판을 헤치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넘어

내가 이르는 가시밭길 너도 이르고

내가 닿는 꽃길 너도 걷고


녹녹치 않은 삶의 바위를 이고

뜨거운 세상의 욕심을 안고

검은 밤의 고독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올라

도시를 달려 다다른 그 길 끝에


여기저기 긁히고 패여서

구두약으로 아물지 않고

골마다 일렁이며 상처가 남아서

마음으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이제는 나 보다 더 병든

늙은 구두가 있다


구두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구두약조차 마르지 않은

새구두를 신는다

네가 올랐던 산을 오르고

네가 지났던 들판을 달린다

봄은 온 것 같은데

찬바람 불어 시리고

꽃은 피어 환한데

네가 없어 캄캄하다


뒤꿈치가 말갛다

불그레 젖어 아프다

조용히 울고있다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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