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웅 Mar 15. 2020

아현동이 말하는 소리를 듣다 (Ⅰ)

아현동 재개발구역 |  2008. 11. 28 ~ 12. 02










2000년 11월.

지방 근무 중 본사로 발령을 받아 서울 아현동 언덕에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지방에 남겨둔 채 홀로 시작한 서울 생활.

밤늦게까지 일하고 늦은 잠을 청하고 다시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는 반복되는 생활에서 당구장, 호프집, 냉면집, 노래방, 아현시장, 보신탕집, 아현초등학교 등 활력이 되었던 추억의 장소가 많이 생겼다.

호프집 아저씨의 기타 소리며 당구장에서 먹던 자장면과 세탁소의 화학약품 냄새, 아현시장의 북적거리는 모습.

하교시간 쏟아져 나오는 아현초등학교 아이들.

퇴근하여 아현동 언덕을 오르며 달을 보기도 하고, 숨이 차서 쉬어가기도 하며 그렇게 온가족이 서울로 이사 오기까지 1년의 세월을 아현동과 같이 호흡하며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1. 창문을 바라보는 늙고 초라한 문의 이야기를 듣다


이제 곧 겨울이다

손주 녀석이 손가락으로 뻥뻥 뚫어놓은 격자무늬로 짠 출입문에

창호지를 바르는 어머니의 소리를 듣는다

창문을 바라보는 늙고 초라한 문의 이야기를 듣는다



2. 창문을 열고 멀리 높다란 건물들에게 던지는 말을 듣다


창문을 열고 멀리 높다란 건물들에게 던지는 말을 듣는다

누군가 처마를 맴돌던 참새에게 말하던

먹먹한 가슴 깊은 소리를 듣는다

비가 새는 처마에 앉아 마음을 툭하고 던지며 뱉는

삶의 노래를 듣는다

"나도 언젠가 비탈진 산동네를 벗어나

멀리 보이는 높다란 건물로

훨훨 날고 싶다"고



3.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다


천정이 깨져서 비가 샌다.

모두 교체하려면 기백만원이나 들 텐데....

지갑을 열고 통장을 열고 이내 단념해버린다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꺼져가는 우리들의 한숨 소리를 듣는다



4.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소리를 듣다


나이 지긋한 노인은 말한다

아현동 시장이 있어 좋고 담장이 낮아서 좋고

음식을 나눌 수 있는 넉넉한 인심이 있어서 좋고

대문을 열어도 도둑 걱정 없어서 좋았단다

막상 이사 가려니 답답하단다

마음 상한 그리움을 소리를 듣는다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



(아현동 재개발구역에서, 2008. 11. 28 ~ 12. 02)




#아현동 #재개발 #재개발구역 #아현동재개발구역 #도시재개발 #마포 #서울풍경 #김남웅 #Ahyundong #Redevelopment #RedevelopmentArea #CityRedevelopment #Mapogu #Seoulview #NamwoongKim 


 


[Photo & Edit by 김남웅 (Namwoong-Kim] 

Seoul, Korea

Canon 5D mark2

skgreat@naver.com

http://facebook.com/namwoong.kim.kr

http://story.kakao.com/damndam

http://instagram.com/namwoong.kim.kr

http://brunch.co.kr/@skgreat



[Music by 눈솔]

Track : 바람꽃

Composer : 눈솔

 Watch : http://youtu.be/ZaB9n2D823o


 


매거진의 이전글 내 고향 안개가 내린 날에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