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담벼락 아래에 리어카 하나가 있다.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어
봄철에는 거름이나 비료를 나르고
가을에는 곡식을 싣고
손주 녀석들의 자가용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겨울철 땔감을 한가득 실어나르기도 하고
부뚜막에 바를 진흙을 옮기기도 하고
추수한 곡식을 싣고 봉평시장을 달리기도 하고
가끔 아픈 동네 할배를 싣고 나들이도 갔다.
신작로를 누비기도 하고
조팝나무 하얀 꽃길을 달리기도 하고
밤새 내린 눈길을 헤치며 걷기도 하고
아침 안개 가득한 북길리 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11년 전 늦가을.
바퀴도 멀쩡하고
맞게 짜 놓은 나무판도 쌩쌩한데
집안에 나를 곡식도 있고
봄여름가을겨울 다닐 곳도 많은데
함석 담장 아래 우두커니 서있다.
아버지가 떠났다.
아버지 없는 리어카는 생명 없는 고철이 되어
먼지가 쌓이고
비바람에 이끼가 끼고
눈바람에 녹이 슬고
주인 없는 슬픔에 함께 죽어갔다.
더 이상 세상 구경 못하고.
몇 년 전
큰 도로가 나서 집을 새로 지으면서
그 녀석은 어느 고철집 영감님에게 팔려갔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비었다.
바퀴 있는 것은 슬프다
김남극
바퀴 있는 것은 슬프다
어디론다 가야 하고
공기압보다 큰 짐을 실어야 하고
집 나서면 헝클어진 길을 찾아야 하니
굴뚝 모퉁이에 낡은 리어카
어둠에 바람이 빠졌다가
햇살로 바람을 뿍뿍 자아넣고
엉크런 바퀴살에 녹이 저승꽃처럼 피어도
이젠 더 싣고 갈 가계도 없는데
끌고 갈 사람도 없는데
쫒겨나고 싶지 않은
쫒겨나도 갈 곳 없는 천덕꾸러기처럼
오래 엎드려서
가끔 들여다보는 식솔들 뜨뜻한 시선으로도
뿍뿍 바퀴에 바람을 잣고 있다
바퀴가 있으나 어디론가 가지 못하는 것들은
더 슬프다
(2014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