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이 피었다
아흔아홉날 동안
새색씨 마냥 곱게 물든 꽃
앞마당을 지나
대청에 올라
진달래 꽃 창호문 열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는
안채로 사라진다
백일 째
디딤돌에 꽃신을 벗고
분합문 열고 다가와서
저고리 속 꼭꼭 숨겨둔
사모하는 마음 한 웅큼 내려놓고
툇마루를 지나
행랑채로 사라진다
대청에 서서 바라보니
홍조 띤 백일홍
달빛 타고 하늘로 오르는데
마지막 백일홍 싸릿문에 걸려
오르려 안간힘 쓴다
디딤돌 위 꽃신 신고
싸릿문에 걸린 백일홍 가슴에 품으니
내 몸 달빛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
담장 너머 감나무 가지에
보름달이 환하게 웃고있다
어릴 적 고향집 앞 마당에 백일홍을 심었다.
비교적 키가 작은 채송화, 봉숭아를 심고 그 뒤편에 백일홍을 심었는데 대부분 빨간 색으로 그 빛깔이 곱고 예뻤다.
백일 동안 붉게 핀다는 ‘백일홍’은 고향을 떠난 이후 거의 보지 못하다가 최근 몇 년 전부터 서울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관상용으로 심어 자주 볼 수 있다.
오랜 기억을 더듬어 고향집 앞마당에서 구슬치기나 딱지치기하면서 놀던 그때도 백일홍이 있었고, 옥수수나 감자를 구워먹던 야외 아궁이 옆에도 백일홍이 있다.
백일홍은 유년의 추억이고 한정된 기억을 오늘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통로이다.
[백일홍에 대한 전설]
옛날 한 바닷가 마을에서 물속 괴물(이무기)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처녀가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졌는데, 이때 한 영웅이 나타나서 자신이 처녀 대신 가서 괴물을 퇴치하겠다고 나섰다. 영웅은 처녀와 헤어지면서 자신이 성공하면 흰 깃발을 달고 돌아올 것이고,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고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영웅이 괴물을 퇴치하러 떠난 지 100일이 되자, 영웅을 태운 배가 돌아왔는데 붉은 깃발을 달고 있었다. 처녀는 영웅이 죽은 줄 알고 자결하였다. 괴물과 싸울 때, 괴물의 피가 깃발을 붉게 물들인 바람에 영웅이 죽은 줄 오해한 것이다. 그 뒤 처녀의 무덤에서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100일 동안 영웅의 무사생환을 기도하던 처녀의 안타까운 넋이 꽃이 된 것이다. 이 꽃은 100일 동안 붉게 핀다고 하여 백일홍이라 불렸다.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국립민속박물관]
(201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