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밥 짓는 소리가 새벽을 연다.
아버지는 광에서 양낫과 숫돌을 꺼내고
거미줄 주렁주렁 달린 예초기도 꺼내고
담배에 절은 폐부로부터 기침과 가래를 허공에 뱉으며
단잠 든 자식들을 깨운다.
눈을 뜨자마자 마당에서 낫을 간다
낫을 두손으로 잡고 숫돌 위에 붙이고는
광이 나도록 날을 세우고
손가락으로 쓰윽 대어보고 아버지의 마음에 들 때까지
날을 세우고 또 세운다.
예초기를 매고 동네 주유소에 들러 기름통에 밥을 주고
허름한 공업사에 들러 시동을 걸어본다.
밥과 반찬들을 찬합을 담고
소주, 사과, 배, 송편, 포와 전 몇 가지, 그리고 돗자리를 챙기고
고향 선산에 올라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거슬러 오르면 얼굴로 이름도 생소한 조상들의 묘를 깎는다.
낫을 들고 할아버지 봉분을 깎으며
내가 참 무서워한 할아버지의 기억을 더듬는다.
중풍으로 불편해진 몸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으시려
낮에는 불을 켜지 않아 집안은 어두컴컴했고
밤에는 호롱불을 밝혀 침침함을 넘어 으스스했다.
방문을 열고 인사를 하는 순간 몸이 얼어붙을 지경이다.
나를 엎어 준 기억도 맛있는 것을 준 기억도 없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기억이 없다.
자식의 부축도 싫어서 방 가운데 매달라 놓은 새끼줄과
벽에 기대어 놓은 지팡이가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봉분을 깎는 동안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제대로 못 깎느냐고 호통하실 것 같다.
아버지 산소에 다다른다.
예순을 조금 넘긴 나이에 뭐가 급했는지
가족을 두고 떠나셨다.
늘 엎어주시고 맛있는 것도 사주시던
손주들의 재롱도 멀리한 채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셨다.
아버지 산소의 봉분을 낫으로 깎으며
아버지가 내게 주신 사랑을 더듬어 본다.
가난했지만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고
부족하지만 만족을 알게 하고
없지만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셨던 아버지.
무툭툭하지만 그 넓은 품으로 가족을 안으셨던 아버지.
시간이 흘러 자식을 낳고 기르며
내가 아버지가 될 수 없음을
그 만큼 희생하고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거진 숲을 헤치고
예초기 우는 소리가 골짝을 깨우며
아들, 그 아들의 아들이 모여 벌초를 하는 날.
아버지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모여서
자식들이 건넨 소주 한잔씩 나누며
흐뭇하게 바라보실 것 같다.
(201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