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斷想

찰떡

by 김남웅



등어리 굽은 어머니가

설날에 올 손주들 얼굴이 삼삼해서

동네에서 가장 맛있다는 부드랫골 최씨에게

햇찹쌀 한 말을 사서 머리에 이고는

한 시간을 걸었다


몇 달을 묵혔던 떡시루와

고물장수 눈독 들이던 떡안반과 떡메

깨끗하게 씻으니 영감 얼굴 떠오른다

'더 먹고 싶으면 오래 살일이지..'

영감이 돼지고기 닷근들고

대문 열고 올 것 같다


찹쌀을 찐다

물을 끓인 수증기가 찹쌀을 감싸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끈끈한 사랑으로 익어간다

'서울 사는 손주 녀석들은 언제 오려나...'

진달래 꽃무늬 창호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환하다


열아홉 시집살이에 지친 마음

먹을 것 없던 시절 제사에 오를 떡을 기다렸던 궁색한 살

논 닷 마지기 철수네를 보며 한탄한 가

고생만 시키다가 먼저 간 괘씸한 영감 얼

떡 안반 위에 찹쌀과 함께 얹고

떡메로 두드린다

후련한 듯 아련하다


고소한 맛이 좋다던 아들 생각에

찰떡에 콩가루를 묻힌다

달달한 것을 좋아하던 손주들 생각에

찰떡에 빵가루에 묻힌다

찰떡을 가지런히 쟁반에 담으니

힘 깨나 쓴다고 주절이던 영감이 생각난다


쟁반의 찰떡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굽어진 허리를 이끌고 마당에 나서서

금쪽같은 내 새끼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

아랫목에 앉아 멀끔 멀끔 바라보다 세상 뜬 영감을 기다린다

'오늘 저녁 영감 차례상에 찰떡 한 접시 올릴 수 있겠구나'


아침 공기가 차다




동네 최씨 영감에게서 햇찹쌀을 한말 사신 어머니는 햅쌀을 머리에 이고 한 시간을 걸어서 집에 오느라 힘들기도 할 텐데 자식이 무언지 아무 일 없다는 듯 떡 만들 채비를 한다. 광에 묵혔던 떡 시루를 꺼내서 씻고 베로 짠 보자기를 시루 바닥에 엊고 햇찹쌀에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 후 시루에 차곡차곡 넣는다. 물을 넣은 커다란 솥 위에 찹쌀을 넣은 시루를 얹고 솥과 시루사이에 틈새가 없도록 쌀가루를 물에 이겨서 잘 바른 다음 센 불에 얹어서 찹쌀을 찐다. 어릴 적 가마솥에 불을 때고 찰쩍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가스레인지를 이용하니 떡 만드는 느낌은 덜하지만 그나마 떡집에서 사다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찹쌀을 찌고 있는 동안 어릴 적 정말 먹고 싶었던 카스테라 빵을 채에 걸러서 빵가루로 만들면서 달달한 찰떡을 좋아할 손주들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또 콩을 볶아서 고소함을 더한 뒤 빻아 콩가루를 만들면서 고소한 맛을 좋아할 아들을 생각한다. 광 깊숙이 잠자던 떡안반과 떡메를 꺼내서 깨끗하게 닦고 뒷마당에 떡안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바닥을 잘 고인 후 안반에 물을 묻히고 시루에 찐 찹쌀을 올린다.


떡메에 물을 묻히고 찹쌀의 앞쪽부터 차근차근, 골고루 떡을 두드린다. 떡메를 높이 들었다가 그 내려오는 힘으로 떡을 치고, 떡메를 앞으로 밀어 찹쌀 알갱이가 부서지도록 눌러주고를 반복하는 동안 장정도 가쁜 숨을 몰아쉰다. 떡메에 물을 묻히지 않으면 떡이 붙게 되어 떡을 치는 동안 이곳저곳으로 떡 조각이 날아가기 때문에 계속 물을 묻혀가면서 떡을 쳐야 한다. 어머니는 방금 쪄서 하얀 김을 내는 뜨거운 찹쌀을 떡메로 잘 칠 수 있도록 차가운 물에 손을 식혀가며 떡을 뒤집어 놓는다. 찹쌀이 완전히 뭉개지면 씹는 맛이 덜하기 때문에 몽글몽글 씹힐 때 까지만 떡을 두드린다.

떡을 하는 날은 떡메로 두드리는 소리와 가족들의 넉넉한 웃음이 퍼져나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게 마련이어서 떡을 만들고 나면 동네에 떡을 돌리곤 했다.


어느 정도 찰떡이 되면 먹기 좋게 기다란 형태로 모양을 만들고 콩가루와 빵가루를 잘 입혀서 찰떡을 완성한다. 찰떡은 따뜻할 때 먹는 것도 맛있는데 하루 정도 지나서 굳으면 숯불이 담긴 화로에서 노릿하게 천천히 구우면 그 맛은 가히 일품이다.

한겨울 밤 출출할 때 감자와 찰떡을 화로에 구워서 먹는 맛을 요즘 아이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꿀이나 설탕이 없어도 그 달콤하고 쫄깃한 맛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시대가 변하고 입맛이 변해도 어릴 적 기억이 주는 어머니의 맛은 잊을 수가 없는 법이다.


찰쩍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구부정한 허리에 찹쌀 한말을 머리에 이고 한 시간을 걸어야 하는 수고와 무거운 떡안반과 떡메를 꺼내야 하는 번거로움과 뜨거운 찹쌀을 손에 물을 묻혀가면서 만져야 하는 인내가 골고루 배합된 어머니의 사랑이다.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쏟아야 하는 찰떡에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 손주에 대한 사랑, 일찍 세상을 떠난 영감에 대한 미안하고 보고 싶은 마음을 담겨있다.


초저녁 어머니가 단잠을 자며 끙끙 앓는다.





(2007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