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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Jan 12. 2021

부득이하게 폐강되었습니다

첫 문센 데뷔 좌절로 쓰는 넋두리


야심 차게 등록해뒀던 대형마트 문화센터 강좌들이 취소됐다는 문자가 줄줄이 날아온다. 아래와 같은 사유로 부득이하게 폐강됐다는데, 그 사유인즉 ‘천재지변’이라고 한다. 맞다. 코로나는 천재지변이다. 진행이 어렵게 돼서 죄송하다고 하지만, 죄송할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애 귤 안좋아하는데 마침 잘됐어요...?




임신, 출산, 육아 전 과정을 코로나와 함께 했고,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2020년, 출산 예정일을 몇 달 앞두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기대하던 베이비페어는 취소됐고, 출산 전 친구들 만나서 실컷 놀아둬야지 했던 목표가 무산됐으며, 베이비샤워 같은 것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못했다.


만삭 때는 마스크로 숨쉬기가 정말 힘들었다...


출산하러 가는 날도 마스크를 쓰고 분만실에 갔다. 아기의 탄생을 함께 기뻐해 줄 가족들은 병원에 오고 싶어도 면회 금지로 오지 못했다. 유일한 보호자인 남편은 입원과 동시에 나와 함께 병원에 감금되어 삼시 세끼 미역국을 먹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내가 출산한 5월은 코로나가 조금 하락세를 띄던 시기여서(난 이때 코로나 종식되는 줄 알았음) 외부인 면회는 금지였지만, 산후조리원에 남편의 출입이 가능했고, 외출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래라면 조리원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며 다른 산모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을 텐데, 매 끼니는 무조건 개인 방에서 먹어야 했다. 그래서 조리원에 머무는 2주 동안 나는 조리원 방 문 바깥으로 튼튼이, 복덩이 같은 아기들의 태명이 적힌 이름표들만 실컷 봤고, 그 아기들의 얼굴도, 그 아기들의 엄마도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는 나의 조리원 동기도 앗아갔다.




아기를 낳고 나니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꽤 많이 바뀌었다. 아이가 없을 때는 기혼과 미혼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기니 미혼/자녀가 없는 기혼/자녀가 있는 기혼 세 부류 사이의 명확한 영역이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내 생활 패턴은 아이에게 맞춰지고, 주된 관심사 또한 모두 아이에 관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를테면 아기의 수유 텀과 수유량, 태열에 좋은 로션, 배앓이 등의 주제를 미혼인 친구와 이야기 나누기는 약간 거시기 하지만, 비슷한 월령의 아이가 있는 친구와는 수유 텀 하나만으로도 한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초산의 초보맘은 육아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전무한 상태라, ‘육아’라는 외딴섬에 나 홀로 떨어진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 고충을 공유하고 위로할 일종의 동지가 필요했다. 그러니 ‘맘친구’라는 것이 왜 존재하는 건지, 다들 그렇게 ‘조동’을 말하는 건지 잘 알 것도 같았다.


출처: 드라마 ‘산후조리원’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네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출산한 맘친구를 사귀게 됐다. 비록 마스크는 쓰고 있었지만 가끔 공원 산책도 같이 했고, 집에 초대도 해서 놀기도 했다. 또, 집 주변을 떠돌다가 같은 해에 출산을 한 아파트 이웃주민과 말을 트게 되기도 했다. 뜻밖의 기회에 나에게도 맘친구가, 우리 아이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덕분에 조동 없는 서러움이 조금은 가셨다.


보고만 있어도 귀여운 조합이다


그리고 아이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문화센터가 다시 개강을 시작했고, 문센 지박령이 될 기세로 괜찮아 보이는 강좌를 잔뜩 신청했다. 집에서 아이를 놀아주는 게 슬슬 패턴이 지겨워지던 찰나였고, 아이 역시 점점 호기심도 늘어나고 에너지도 넘쳐나서 이 기회에 새로운 자극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나와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 될 두근두근한 그 순간을 기다렸건만, 야속하게도 코로나는 다시 대유행이 시작됐다. 엘리베이터라도 잘못 탔다가 코로나에 확진될까 무서워서 외출을 자제했고, 아이는 아직 마스크 착용이 권고되는 월령이 아니라 마스크 씌우는 걸 피하고 싶어서 식량을 쟁이러 마트에 잠깐 가거나, 병원에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되도록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마스크를 씌우는 게 미안했고, 얌전히 쓰고 있는 모습이 더 미안했다.


결국 새로 사귄 맘친구들은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아이와 집에 갇혀 문화센터 취소 문자나 받고 있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임신부터 육아까지, 1년이 넘도록 부득이한 ‘코로나’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버리고 이해해야 하는 상황들이 참 많았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괜찮지 않았고, 괜찮지 않다.


나와 같은 엄마들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된 육아로 모두 지쳐있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다들 외롭고 고독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힘내 봐야지’ 싶다가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확진자 수를 뉴스로 접할 때면 금세 사기를 잃는다.


언제쯤 이 길고도 긴 천재지변은 끝이 나는 걸까. 나도 제발 문센에 좀 가보고 싶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린 사람들만 만나고 있다. 아이가 보는 세상이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원래 다 이렇게 생긴 줄 알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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