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어쩌면 인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운전에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뭐 운전 하나 가지고 이렇게 진지해질 일이냐만은, 허구한 날 운전에서 도망치려는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무언가를 얻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해 본 적이 과연 언제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간 시간이 흐르면 운전을 잘하게 되겠지’라며 막연한 미래에 희망을 품고 있는 나의 게으름과, 노력 없이 안일하게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나의 옹졸함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접촉 사고의 트라우마가 깊어서 그렇다며 핑계를 대고 변명하는 것도 어쩐지 지겹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아빠의 직장 어린이집에 입소하면서 나는 반 강제적으로 운전대를 다시 잡게 됐다. 아빠가 육아 시간을 사용해서 어린이집 등, 하원을 담당하기로는 했지만, 어린이집 입소와 동시에 아빠 역시 부서 이동을 하게 되면서 두 남자의 적응기간 동안은 내가 아이를 하원시켜 집으로 데리고 와야 했다.
최소 2주, 만약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 길어진다면 3개월까지 매일 운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집에서 어린이집까지는 편도 약 8~9km 정도의 거리고, 고작 30분 정도의 시간이면 갈 수 있다. 게다가 거의 직진만 하면 되는 어렵지 않은 길이라 할만하다는 생각이 든 반면, 초보운전인 내가 앞으로 도로에서 저지를 변수들은 나 조차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그래서 첫 등원을 앞두고 미리 주행 연습도 해뒀다.
등원 첫 주차에는 1시간~3시간 정도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나마 차가 많이 없는 시간대라 운전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심지어 아이는 2주도 채 안 되는 기간 안에 어린이집 적응을 끝내준 덕분에 엄마의 운전도 대폭 감소시켜 줬다.
적응기간이 끝난 뒤에도 남편의 업무가 많은 날이나 야근, 회식 등이 있는 날이면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갔다. 같은 길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아이를 하원시키는 길만큼은 익숙한 길이 됐다. 네비를 보지 않고도 어느 구간에 차가 많은지, 과속 카메라가 어떤 지점에 있는지도 파악하게 되니 운전이 편해졌다. 적어도 사고가 날까 봐 과도하게 불안에 떠는 습관은 없앨 수 있었다. ‘일단 출발하면 어떻게든 집까지 도착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충분히 고무적인 결과였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했던 복병은 도로가 아닌 주차장에 있었다. 어린이집 건물 주차장은 이중 주차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차들 때문에 식은땀을 흘린 날들이 더러 있었다. 출구로 나가려다가 이중주차된 차와 차 사이에 애매하게 껴버린 날에는 D와 R을 수십 번 반복 조작하고, 차 대가리(?)가 다른 차에 닿았나 안 닿았나 내려서 반복적으로 확인하다가 겨우 주차장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때, 주차장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길래 사실 그 아저씨한테 도와달라고 할까 생각도 했지만 어쩐지 창피해서 말을 못 걸었다. 결국은 내 힘으로 주차장을 빠져나온 그날은 내 운전 포트폴리오에 기록해도 될 만큼 좋은 운전 경험이 됐다. 차폭감은 직접 내려서 확인하는 게 직빵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내 차 바로 앞에 주차해 둔 차를 밀어 보기도 했는데, 그게 뭐라고 왠지 능숙한 운전자가 된 것만 같아서 뿌듯했다. 또 어떤 날은 이중주차가 된 차 사이를 빠져나오던 중에 아이의 같은 반 친구 아버님을 우연히 만났다. (나는 또 내려서 차 간격을 확인 중이었다…) 차 앞을 직접 봐주겠다고 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주차장을 빠져나온 날도 있었다. 그날 아이 친구 아버님이 마치 구세주로 보였다.
엄마가 주차장에서 고철덩어리와 낑낑거리며 사투를 벌이는 동안, 다행히도 그리고 고맙게도 아이는 얌전히 잘 기다려줬다. 아마 엄마가 운전이 서툴다는 것을 눈치껏 대충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주차장의 다른 차들을 긁을까 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몇 차례 하고는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차를 예쁜 곳에 잘 대두라며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요즘도 가끔 아이를 하원시키러 가는데, 이제는 차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차도 밀어보고, 전진 후진 반복하며 낑낑거리기도 하고, 정 안 되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지 뭐‘하는 뻔뻔함도 살짝 생겼다.
하원 후 놀이터에서 놀다 가자는 아이의 요구에 응해주다 보면 퇴근 시간대에 걸리기도 하는데, 러시아워 속에서 차선을 휙휙 바꾸는 차들 때문에 긴장을 바짝 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서두르지 않고 내 속도대로 천천히 가다 보면 어쨌든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너와 나의 하원길, 운전에 집중하는 동안 아이의 조잘거리는 수다에 응해주지 못하기도 하고, 심지어 아이에게 잠깐 조용히 좀 해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다. 그래도 너를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가겠다는 필사적인 엄마의 마음 하나만 알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