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실수

by 무기명

세렌디피티. 대학가에 있는 카페 이름처럼 들리는 이 단어는 실수로 탄생한 위대한 발견이라는 의미입니다. 위키백과에서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을 예시로 들고 있는데 이 실수 덕분에 인류는 항생제를 손에 얻었다고 합니다. 세렌디피티란 단어가 이렇게 멋있어 보인 적이 있을까요. 회사에만 가면 새가슴이 되는 수많은 사람의 이마에 세렌디피티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는 상상을 합니다. 아니 근데, 실수하면 어떱니까. 인생을 앗아갈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라면 뭐 별거 아닌 실수일 텐데. 또 처음 하는 실수라면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진짜 별거 아닌 실수네요. 일주일 뒤면 정말 콩알만 한 해프닝일 거예요.”


하지만 어떤 실수냐에 따라 사실 뉘앙스가 달라지긴 합니다. 실수가 두 가지로 나뉜다면 처음 하는 실수와 반복되는 실수일 겁니다. 후자일 경우는 너스레 좋은 팀원이라도 커버치기 힘들어 보입니다. 아주 사소한 실수라도 말이죠. 반복되는 실수를 연속적으로 했다? 이때부턴 그 사람의 자질을 따지게 됩니다. 일을 잘한다 못한다의 기준 중엔 실수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희 팀장님도 이렇게 말하더군요.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 내가 생각했을 때 실수를 안 하는 거랑 즐겁게 하는 거야.” 맞는 말 같아요. 누군가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메일을 보내기 전 검토하고, 일정 데드라인 숙지하고, 구두로 정한 약속도 잊지 않고 본인만의 노하우를 펼칩니다. 실수를 하지 않는 그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내부 검토와 그로 인한 확신을 갖게 되는 치열한 과정이 있습니다.


첫 실수는 추진력을 위해 꿇은 무릎과 같습니다. 명확한 일 처리를 위한 능률적인 방법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니까요. 누군가는 실수가 없다는 것을 경계하기도 합니다. 정해진 틀 안에서 매번 같은 업무의 과정을 반복할 때 실수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복된 업무를 하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우리 인생엔 일만 있는 게 아니니까 넓은 의미에서의 실수를 봐봐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수를 장려해야 합니다. 처음 보는 실수를 반가워해야 합니다. 축구할 때 헛발질했던 잔가지 같은 실수로도 친구와 배꼽 잡고 웃을 수 있으니까요. 실수투성이일 새로운 도전은 쉽지 않겠지만 우리 기억에서 잊혀지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또 얼마나 보람차겠습니까. 실력이 아기였던 그 순간이 있어야만 상대적으로 선수급인 지금의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내 실수는 향후 나한테 돌아올 행운일 것이라 유념해 봅니다. 물론 자기반성 이후에 이런 자기합리화를 해야 합니다. 실수는 어쨌든 실수니까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지 않았습니까. 실수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숙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민하고 생각해 봅니다. 챗GPT도 찾지 못할 그 순간의 차선책을 우린 모색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커버되겠다란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수의 패턴은 늘 비슷하기에 다른 상황 다른 실수여도 우린 해결의 노하우를 펼칠 수 있습니다. 실수를 별일이 아닌 듯 넘어갈 수 있게 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잘못을 인정함과 어색한 공기의 교류를 순환시킬 너스레함. 어른들의 노하우를 직접 보고 배워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가끔 찾아오는 어른들의 아차 순간. 유려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해결하는 기획팀장님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역시 프로의 실수는 깔끔한 것이구나라고 하나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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