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운 일대기

by 무기명

행운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직접 만들 수도 있고 만들어진 것.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신민아가 선배의 키링을 보고 “선배 행운은 귀엽게 생겼네요”라고 말했었는데 그 행운은 키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네잎클로버나 숫자 7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행운. 행운의 상징성을 지닌 게 아닐까. 덕분에 행운은 멀리 있지 않고 6과 8 사이에 있는 것, 초록 공원에 쉽게 보이지 않지만 그 어딘가에 있을 것이기에 희망이랑 거리감을 좁힐 수 있게 된다. 아마 우린, 가지각색으로 커스터마이징한 행운 하나씩은 갖고 있을 테다. 내 행운은 크게 3가지 모습의 변천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생긴 내 행운의 숫자는 8. 유행처럼 돌던 7이 아닌 다음 숫자였다. 그때부터였을까? 왠지 모르게 남들과 똑같이 생긴 행운을 갖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타이밍 좋게 축구부 등번호 배정을 8번으로 받았다. 매일 축구를 하며 8번을 달고 살았고 매학년 올라갈 때마다 출석부 배정이 8번이길 기대했다. 이 어릴 때의 8 사랑은 대학까지 안고 갔다. 대학 축구부에서도 선배들이 등번호 원하는 걸 고르라고 인자하게 선의를 베푼다. “아 그럼 전 8번이요.” 대뜸 미드필더의 상징 8번을 선취하려는 후배의 기세에 당황했는지 그 번호는 다른 선배 내정되어 있다고 하더라. “아 그래요? 그럼 88번 할게요.” 덕분에 난생처음 더블 8을 등번호로 해볼 정도로 8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고등학교 땐 hg A+ clear라는 뒤죽박죽 문법투성이인 게 내 행운의 단어였다. 그래서 중요한 시험을 보기 전 책상에 저 단어를 써두었고, 수시 채용 발표 날엔 하얀 시멘트 벽에 굵직하게 써두었다. 그리곤 ‘서강대 합격!’이라 적어두기도 했다. 행운의 크기가 작았나 목표했던 대학은 떨어졌지만 2순위의 대학을 붙게 되었고 수시 합격자 설명회에 발표하려 다시 학교로 갔던 적이 있다. 여러 수시 팁을 전수해 주고 후배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에 한 학생이 그러더라 “선배 3학년 7반이었죠? 벽에 hg A+ clear 서강대 합격! 봤는데 감명 깊게 봤어요.” 아아… 못 볼 걸 봤구나. 민망함을 무릅쓰고 대신 지워달라고 부탁했다. 그토록 맹신했던 행운의 낙서. 왜 그랬을까;; 지금 포장해 보면 얼마나 간절했을까라 할 수 있겠지만 흠… 오그라들지만 좋은 결과를 위해 이런저런 발버둥 쳤던 내 모습들을 압축해 놓은 한 단어이지 않을까. 미신을 믿지 않지만 행운이 곁에 있다는 걸 믿고 싶었다.


지금 내 행운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행운이란 존재는 있다고 믿지만 이젠 숫자나 단어로 상징성을 대표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다고 듣고 싶었다. 취업에 성공했을 때는 친구들에겐 운이 좋았다고 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인복 하나는 좋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땐 숫자 8 덕분에, 고등학교 땐 정체 모를 한 단어 덕분에 행운이 찾아왔다 믿었다. 행운이 찾아올 것이란 기대의 시작을 나로부터 출발하고 싶다. 최근 잊지 못할 경주 여행을 갔다 온 것도 빠른 판단과 연차를 낼 거라는 너와 나의 결정력 덕분인 거고, 축구 경기 직관을 가서 황인범의 속 시원한 슛을 바로 뒤에서 본 것도 주변 지인을 잘 둔 내 덕분인 거니까. 앞으로 나에게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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