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만 행복하다 말하고 싶지 않아

by 무기명

‘행복’이란 워딩은 식상해졌습니다. 순전히 워딩 그 자체만 말하는 겁니다. 의미는 전혀 식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데 흠... 너무 자주 봐서 그런 걸 까요? 매주 축구하러 가는 학교에서도 쉽게 행복이란 단어를 마주합니다. 화장실에 아이레벨로 붙여져 있는 누군가의 문장에서의 행복. 그 옆에 누군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다른 작가의 행복. 그 순간 왠지 모를 반항감이 새어 나옵니다. 그 순간 행복이란 단어가 포함된 문장이 고루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나에겐 행복이란 건 ‘좋아요!’라는 기계적인 답변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듯합니다. 큰일 났습니다. ‘좋아요’도 의미 자체로는 안 좋은 게 하나도 없는 말인데... 무분별한 “좋아요!” 남발로 인해 저 스스로 대답만큼은 다르게 말해보자고 ‘좋아요’를 잊어보자 다짐합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기분 좋다?’, ‘웃음이 나온다?’, ‘개운하다?’, 아님 ‘ㅎㅎㅎㅎ?’ 흠... 생각해 보니 대체할 수 있는 특정한 단어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행복’이란 단어를 고루하게 여겼던 이유는 너무 쉽게 하루의 감정을 압축해서 멀멀한 단어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감동적인 순간의 눈물이 담긴 행복의 밀도와 소리치며 웃고 떠들었던 감정은 다르지 않습니까. 어쩌면 누군가에겐 행복한 순간의 최고 리액션은 고작 미소일 수 있습니다. ‘더 글로리’에서도 같은 맥락의 대사가 있었죠. 문자 답장을 왜 하지 않냐는 박연진의 말에 하도영은 이렇게 말하죠. “했어, 무응답으로.” 실제로 무응답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다부터 혼란스러움까지. 일종의 기싸움이 될 수도 있고 본인의 생각을 오히려 강력히 피력할 수 있는 응답 중 하나입니다. 카톡에선 무응답의 쎄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열심히 업데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이모티콘부터 답장마다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이모티콘까지.


행복이란 건 응답을 바라고 오는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온전히 내 생각을 펼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걸 행할 때 퍼지는 속 시원함. 후회 없을 그 순간. 참으로 찰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안줏거리가 될 수도 있고 참으로 사소해 보여도 하루를 의미 있게 해주는 소중한 보람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감정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방금 느낀 감정은 이미 지나가 버린 감정이 되었고 다시는 그 감정을 복기하기는 힘듭니다. 우린 유추의 단계에 접어들어 늘 그 당시의 행복의 정도를 추측해왔습니다. 그래서 쉽게 ‘행복’이란 말을 썼나 봅니다. 그 감정이 정확히 어떤지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할 수 없는 아리까리함. 세상 모든 사람과 합의된 ‘행복’이란 단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행복’ 없이 행복을 말할 수 있을지 잠시 고민해 봤는데 어렵습니다. 아직 정립되지 않은 범주로 인해 어디까지가 남들이 보기엔 행복일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내가 느끼는 행복은 역시 나만 아는 것일까요. 그럴 것 같습니다. 뜬금없지만 번지점프를 해보신 분은 알 것 같습니다. 누구는 떨어질 때가 가장 스릴 있었다고 하는데 저는 떨어진 후 반동에 의해 다시 올라가는 그 순간이 가장 스릴 넘쳤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반동 이후 최고치까지 올라갔다 내려가려는 그 순간이라고 했고요. 똑같은 번지점프를 했어도 다 다른 포인트에서 최고의 스릴감이 있었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논리적인 설명 따윈 필요 없습니다. 가슴 벅찬 그 순간을 감히 누가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은 늘 가까이 있다는 말이 역시 틀린 말이 아니었단 걸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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