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만감을 느낄 때가 살이 찌고 있을 때라고 한다. 포만감이란 게 투명한 술잔처럼 눈에 보이면 좋겠다. 의도적으로 넘치게 따르지 않는 한 우린 적당히 술잔을 채울 수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살찌기 싫다면 배부르다는 생각이 나기 전까지 먹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식욕이 왕성하지 않다. 음식을 숙제처럼 먹는 성향이라 아침 먹고 12시쯤이면 점심 먹고 퇴근하면 저녁을 먹는 순차적인 과제 달성 중 하나다. 막 살을 빼야겠다는 의도로 엄격한 규율 아래 포만감이 들기 그 직전까지 먹진 않는다. 배부르다는 감정보다는 맛있음을 즐기는 그 순간을 더 좋아해서 그렇다. 맛있는 건 먹어도 먹어도 맛있겠지만 배부를 때 먹으면 본래 맛의 감도는 낮아진다. 고작 배부르다는 이유로 음식의 맛이 희석되기보단 딱 맛있는 그 순간까지가 음식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순간이다.
쯔양이나 히밥 같은 먹방 유튜버를 보면 음식이 끝없이 들어간다. 처음에는 맛에 대한 리액션이 줄곧 보이지만 그 경계를 지나면 ‘과연 어디까지 먹을 수 있을까’ 본인만의 도전으로 바뀐다. 보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 ‘맛있겠다’보단 ‘대단하다’일 테고, 시간이 갈수록 ‘먹고 싶다’가 아니라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이지 않을까. 가수 비가 홈트레이닝 하며 입짧은햇님 먹방을 보는 것도 이런 이유 아닐까. 대리만족. 1시간 동안 먹는 영상을 보기만 해도 그 음식은 이미 먹은 거나 다름없고 정체 모를 디지털 배부름이 찾아온다. 물론 먹방 영상을 끝까지 본 적은 드물다. 대부분 꼬르륵거리는 아우성을 못 참고 먹으러 가서;;
밥 먹을 때만 배부름이 있는 게 아니다. 일을 할 때도 찾아오는 배부름이 있다. 이 포만감은 성취감과는 결이 좀 다른데 일을 끝내서 얻는 배부름이 아니라 하고 있는 일이 쉴 틈 없어 떠밀려온 상황에서 오는 정신적 배부름이다. 일은 하나둘씩 쌓여가지만 해탈이라도 한 듯 나른해지고 더 이상 새로운 일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누군가 입에 넣어주는 일을 기계적으로 씹게 되고 익숙한 맛을 느끼며 남들이 먹어보지 않아도 알만한 맛의 감정 같은 결과물들. 일에 대한 탐닉이 아닌 표면에서 겉도는 단순노동을 하듯 행동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런 일의 배부름이 지속되면 고인물이 되는 건 한순간일 텐데... 뻔한 아웃풋을 기대할 인풋은 없으니 우린 배부름을 소화시켜야 한다.
주 52시간제는 옛말이 되었다. 인간에게 최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오히려 장려하고 있는 이 퇴색적인 현실은 우리의 소화를 마냥 도와주지 않을 듯해 보인다. 언제나 그래왔든 스스로 소화시켜야 한다. 취준시절엔 일 자체의 배고픔과 갈증을 느꼈지만, 이젠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배부름을 껴안고 살아가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배부름을 안고 사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주위 팀원들은 각각의 이유로 병원에 간다. 심지어 8만 원이나 하는 링거를 맞고 오기도 하더라. 나 또한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몽롱해지고 예민해진다. 누군가는 곧 쓰러지는 거 아닐까 싶을 땐 딱 타이밍 맞게 휴식기가 찾아온다. 얼마 만의 당근인가. 이 정도면 광고란 일은 단거리 종목에 가까워 보인다. 단거리 경주를 수십 년 해가고 있는 수많은 선배들. 광고인, 아무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