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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Jan 11. 2024

사수가 있어 다행이야

 “사수 없이 살아남는 꿀팁”

 유튜브나 온라인 강의에서 자주 쓰는 타이틀이다. 이런 타이틀이 즐비하는 걸 보면 그만큼 유입률이 높고 공감하는 타겟들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사수 없는 신입의 회사 생활은 마치 보호자 없이 횡단보도를 아장아장 건너는 1~3살 아이와 같다. 차 안에서 안전벨트를 맨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떨릴까. 사수 없는 두려움을 토로하는 주변 지인들이 여럿 있다. 지금까지 난 운이 좋게도 사수가 늘 있었다.


 회사에서의 보호자. 즉 사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클까? 지금까지 만난 광고업계 선배들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대게 사수가 없었음을 아쉬워했다. 사수가 없어서 아는 형에게 지면PPM을 공유받았다는 아트디렉터 선배, 팀장님한테 혼나면서 배웠다는 카피라이터 선배. 선배들이 신입인 시절,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을 시키는 팀장님에게 차마 못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고 막막하고 떨리는 심경을 두 손에 가득 담아 이곳저곳 구글링하면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행위가 시작된다. 이렇게 회사 업무가 창작이 되는 느낌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구체적인 결과물을 제시해야 할 업무가 추상적인 예술 형태를 띠고 있으면 안 되는 건 초짜였던 본인도 잘 알고 있으니까.


 인턴 때 만난 사수님은 사수가 아니라 선생님에 가까웠다. 일상에서 카피라이터가 갖춰야 할 자세부터 업무에 필요한 기초지식, 콘티 레이아웃, 또 사회생활까지. 수영장에 걸쳐 앉아 발헤엄부터 배우는 것처럼 대학생 티가 나지 않은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한 발버둥침을 배웠다. 3년차인 지금도 보호자가 필요하다. 아직은 의지하고 싶다. 회의실에 들어갈 때 옆에 있는 팀원이 있고 없고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진다. 팀은 혼자가 아니다. 기획 팀이나 프로덕션 미팅할 때 아이스브레이킹 겸 뻘한 소리를 내뱉어도 이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나 혼자 그들을 마주해야 한다면 어떻게 회의를 시작할 수 있을까. 내뱉는 말은 검토자들이 서너명인 결재란처럼 복잡한 회로를 거쳐질 테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지만, 사공이 한 명이면 가고자 하는 곳이 곧 길이 되고 조금이라도 논점에 벗어난 말을 시작으로 프로젝트에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팀원이 버젓이 있는데 빠른 일의 진행을 위해 혼자 의사결정을 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던 팀장님의 말처럼 혼자서 프로젝트를 맡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란 걸 상상만으로도 체감된다.


 지금은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없어진 회사와 흩어진 사수님들. 어깨너머로 또는 직접 배웠던 업무 노하우를 새로운 부서에서 알음알음 적용하고 있다. 덕분에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업무적 긴장감. 처음 접해보는 업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어디 가서든 잘할 거야” 넌지시 던져주신 말을 곱씹으며 새로운 시작에 전심전력하고자 다짐한다. 이 좁디좁은 한국 사회에서는 언제든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우연히 만나는 날이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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