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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Mar 07. 2024

나랑 방 보러 갈래?

 지금까지 이사할 땐 내 돈 걱정 따윈 없었다. 내 방은 어떤가, 학교랑은 거리가 먼가 이 정도 선이었다. 독립을 하려는 지금은 모든 게 돈 걱정부터 시작된다. 내가 가진 현금은 어느 정도인지, 은행에서 적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은 뭐가 있는지, 전세 보증금 한도와 반전세할 때 월세는 커트라인에 들어오는지까지. 내가 이사 갈 집의 1차 관문은 차디차고 차디찬 돈이다. 어렵게 통과한 집에 대해선 부동산 중개인 분께 간략한 스펙을 요구한다. 앞서 말씀드렸던 인재상과 버금가는 이상적인 거주 조건, 즉 건물상에 근접하거나 조금 오버되는 매물들이 이곳저곳에서 밀려온다. 서울대입구부터 사당까지 10곳 넘는 부동산에 찾아가 프로필을 돌려서 그런지 꾸준히 새로운 매물이 업데이트된다. 가끔은 당황스럽게도 전화가 많이 올 때가 있다. 방금 좋은 집 나왔으니 검토해 보라는 말과 함께 문자로 집 외관과 방 컨디션을 볼 수 있는 사진이 연달아 온다. 역세권의 중요성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관과 내부 컨디션이 보통 이상이면 바로 역까지의 거리를 확인한다. 넓은 아량으로 10분 이내면 곧장 가수 적재의 달달한 보이스를 문자에 담아 답장을 보낸다. “저랑 방 보러 가시죠”


 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이었지만, 언덕인 곳이 잦았다. 대로변에 있는 곳은 구옥이거나 옵션이 하나도 없는 곳. 87년도 건물까지도 봤던 적이 있다. 계단을 오를수록 내 집이 아니겠다란 생각의 확신도 올라갔고 마지막에 쐐기를 박은 건 문에 매직으로 적힌 301호였다. 여기가 힙지로 그 자체랄까...? 그런데 문이 열리자 채광이 쫙 들어오더니 최근에 새로 하신 실내 인테리어가 두둥등장. 이런 반전 매력 덕에 이 집은 세련스럽다란 단어에 가까웠다. 신혼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었고 자취남 채널에 나와도 될 만큼 센스가 넘치신 분들이셨다. 게다가 에어컨과 냉장고를 싸게 파시겠다고 하시는데... 고민이 깊어졌다. 가격대도 괜찮았지만 관리가 되지 않는 구옥이라는 점이 거슬렸고 결국 다른 분께 양보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또 다른 매물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땐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부동산 아주머니와 같이 갔었는데 위치, 외관, 내부 컨디션, 풀옵션, 가격 모든 게 괜찮았다. 만족해하며 집을 나오자 중개인 분께서 방을 보러 온 다른 사람도 있으니 여긴 가계약부터 하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 일단 급한 건 아니라 더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 했는데... 가계약 알아보려는 찰나 이미 다른 분께서 계약을 진행 중이라 하셨다. ?!? 아니 집 보자마자 2시간도 안 되어서 계약을 한다고..? 아직까지 그 집이 눈에 아른거린다. 오늘도 퇴근하고 볼 집은 있지만 과연 내 집이 될 수 있을까. 인생 첫 자취를 함께할 내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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