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지만 싱글은 아닌

4. 나만의 챌린지_대화의 시작

by 무기명

같은 회사를 다니는 동아리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그때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여자친구가 한국에 없을 때 할 수 있는 활동적인 활동을 하자는 것.

비가 오는 날이지만 꿉꿉하지는 않았다. 인턴으로 있는 동아리 친구가 계약 연장한 날이다. 화장실에서 만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오래간만에 저녁 먹자고 제안했다. 평상시 둘이 저녁이나 술을 마시는 걸 선호하지 않지만 그날은 달랐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이유는 명백했다. 계약 연장이라는 기쁜 소식이 있고 비가 오니까. 비가 오면 파전이나 삼겹살 정도는 먹어줘야지. 막걸리도.


2021. 8. 17.


친구 사이인 두 명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과연 재밌을까란 생각이 있었다. 좋은 점보다는 불편한 상황이 먼저 생각난다. 그런데 좋은 점을 같이 퇴근하는 길에 찾았다. 굳이 가까운 술집에 안 가도 된다는 것. 좀 멀리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힘들지 않다. 시간은 흐르니까. 흐를수록 둘의 어색한 공기를 덜 마셔도 된다.

이수역 근처 술집을 검색해 첫 번째로 나온 곳으로 갔다. 막걸리 종류가 굉장히 많았고 메뉴도 많았다. 진정한 맛집은 메뉴가 조촐하다던데... 여하튼 막걸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곳이었다. 와인처럼 가볍고 무겁냐, 끝 맛이 달콤한지 어떤 향이 나는지 꽤 디테일했다. 메뉴판 자체에도 수식어가 참 많은 막걸릿집이었다. 너무 많은 정보에 혼란스러웠지만 우리에겐 직원 추천이 있지 않나. 우린 장수나 지평막걸리와 유사한 종류의 술을 원했고 그에 걸맞은 막걸리를 내오셨다.

자, 이제 상차림은 끝났다. 대화를 시작할 시간.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둘만의 공통사로 화두를 던지거나, 대화의 촉진제가 될 물건을 선보인다. 그날은 명함이라는 좋은 소재가 있었다. 저번에 지나가는 말로 명함이 나왔다 했으니 오늘은 받으면 된다. 받고 회사 이야기로 입을 풀고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으면 된다. 여기는 회사와 멀리 떨어진 곳이니까.


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는 끈질기게 듣지 못한다. 집중하는 척도 다 티가 난다. 예전부터 솔직하다란 말을 들었지만 다른 말로는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해 대화를 끊으려는 직언이나 지루한 표정을 보인다는 등 대화를 선별했다.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만나면 이런 행동은 유머가 된다. 이런 루틴에 적응해 있어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꺼렸나 보다. 둘이 있으면 여럿이 있는 것보다 본인만의 이야기를 더 깊이 하니까.

이 친구는 솔직히 둘이 만나길 기피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짧게 화장실에서 만나더라도 본인의 고충, 현재 일의 진행사항을 샅샅이 말했다. 그것도 매우 힘들다는 표정으로. 화장실은 노폐물을 버리는 곳 아닌가. 쌓이지 않게 비우는 곳이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나 지침도 버리는 곳.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지극히 사적인 장소가 화장실이다.


B의 입사 초에 종종 점심을 먹었다. 보통 점심은 팀끼리 먹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 일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것. 쉬는 시간엔 쉬어야 하지 않나. 물론 입사 초에는 궁금한 게 많고 일에 호기심이 꽉 차 있을 시기다. 이 친구는 달랐다. 부장급 일을 하는 듯 본인 일에 대한 고충 등 일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한 번은 함께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고 조용한 지하철을 일 이야기로 메우기 싫었다. 그게 표정에서 드러났나 보다. 그 친구가 “불편해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참 아이러니한 말 아닌가. 불편해하는 나를 보고도 불편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라... 더욱 불편해졌다.

그날 이후 그 친구의 몇 번의 접선이 있었지만 미루었다. 하지만 생각이 날 때는 있었다. 내가 직장상사에게 깨진 날. 원 없이 회사 이야기를 하고 상사 이야기를 할 대상이 필요할 때. 그래, 서로 직장 이야기만 해도 되는 친구. 2021년 8월 17일은 늦은 저녁까지 회사원 신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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