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빈자리는 역시나 허전했다. 여백일 줄 알았지만 공백에 가까웠다. 공백의 미는 들어본 적 없지 않나. 빈자리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는 따로 약속을 안 잡았다. 한국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게 4년 만이다.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간 듯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사실에 적응해야 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심장 근처에 물을 뿌리는 모습과 유사하다. 지금까지 그녀와 헤어짐 없이 곧잘 연애를 했기에 4년 만에 맞이한 연애의 방학은 낯설었다. 혼자 보내는 기간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중 친구들과 주말에 낮술 마시기. 동네 친구들을 모으고, 보고 싶었던 친구에겐 따로 연락했다.
그중 A는 5급 공무원을 준비 중인 고등학교 동창이다. 건대에 고시원 같은 시설이 있는데 공부에 매진했다. 아직까지 여자친구와 만나고 있었지만 형식에 가까운 만남이랄까. 그 친구는 중간에 헤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공부에만 집중하기로 한 그날, 모든 단톡방에 마무리 인사를 하고 나간 날. 머지않아 다시 연락했다고 말했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솔로가 된 그 허탈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고 했다. 파도에 떠밀려 다시 연결된 만남이었다.
행복할까? 면전에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왜 삶에게 공허함을 허락하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음에 적응하지 못할까. 교과서적인 답이 있다. 취미를 만들거나, 사람을 만나라. 그 친구는 그럴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인생의 지향점이 담겨 있는 공부가 취미가 될 수 없었고. 막중한 책임감에 사람들과 즐겁게 공부할 수 없으니까.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려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풋살을 했었는데 평일에도 공을 찼다. 헬스장도 1년 등록했다. 오랜만에 다시 간 헬스장에는 그림자 냄새가 난다. 유독 혼자 있을 때 눈에 띄는 고독한 새벽의 냄새. 과묵히 쇠질을 하는, 가끔 옅은 신음을 내뱉는 수컷들이 거울을 마주 보고 힘을 주고 있었다. 이제 그 대열에 낄 차례.
문제는 이거였다. 운동시간을 늘렸는데 코로나 4단계라 운동에도 제약이 생긴 점. 새로운 게 필요했다. 아참, 골프도 배우기로 다짐했다. 유일하게 가족이랑 다 같이 할 수 있는 유흥이자 운동. 식구끼리 팀을 나눠 골프 내기를 하고 식사를 하는 그림은 얼마나 이상적인가. 이 모든 이상향은 그녀 덕분에 가능해졌다. 그동안 가족에게 내가 빈자리처럼 느껴졌겠지만, 이번 기회에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그녀의 빈자리는 채울 수 없었다. 운동, 산책, 독서, 영화, 전시회, 술자리, 빈둥거림. 무언가를 하려 할수록 무언가가 허전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의 빈자리는 채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