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1.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었다. 누군가 슬리퍼를 신고 달리기를 하듯 타닥타닥타닥. 면적이 넓은 빗방울의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오늘은 낮술 하는 날. 그 당시 4단계는 낮에는 4명까지, 저녁엔 2명까지만 만날 수 있다. B와 마찬가지로 동아리 친구인 C는 입사한 지 얼마 안돼 술이 땡기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카피라이터를 지망하는 AE지만 막내의 고충을 공유할 수 있는 몇 없는 동생이다. 원래 3명이서 만나기로 했다. 나머지 한 명도 최근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동생이다. 그 동생은 좀 변덕이 있는 편이라 확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전날에 파투를 냈다. 우린 술이 고팠고 낮술을 하게 되었다. C를 단둘이 만난 적은 없다. 동아리에서 같은 팀을 해본 적도 없다. 사실 전날 걱정이 앞섰다. 카피라이터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주된 대화는 막내의 고충 및 광고가 될 예정이었다.
을지로 3가에 곱창전골집에서 만났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화창했다. 비 오는 날 모임에 회의적이었던 태도에 텐션이 절로 올라갔다. 그녀가 머쓱하게 앉아있었다. 도착해 짐 정리를 하고 덩달아 허허허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안부는 누굴 만나나 기본 아니겠나. 동생의 시선은 자유로웠다. 정면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흩어보았다. 그러는 동생을 보니 정면을 뚫어지게 볼 수 없었다.
술을 시켰다. 동생은 술이 좀 들어가야 눈을 마주친다. 땅바닥을 보는 C의 시선이 한 잔 한 잔 들어가면서 10도씩 올라오고 있었다. 술이 달았다. 맛집이라 그런지 회전율이 높나 보다. 1차 마지막 잔은 쓴 맛으로 기억한다. 자리를 옮기라는 뜻일까. 햇빛이 가장 강력한 시간을 넘어서야 1차를 끝냈다. 2차는 을지로의 정서를 담고 있는 힙한 노포로 향했다. 인스타그램에 포스팅 수가 많은 곳이다. 슈퍼 위에 식당이 있고 메뉴판에 없는 짜파게티가 맛집인 곳이다. 배가 부른 우리가 가성비 좋게 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꽤 작은 테이블이었다. 골뱅이무침을 시켰고 술을 세팅하니 꽉 찼다. 동생과 시선 또한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의 시선은 정면을 향했다. 술은 역시 자신감을 채워주는 아이템이다. 그곳의 소주는 살짝 쓴 맛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소맥을 타는데 달달한 비율로 소맥을 즐기기로 했다. 슈퍼에서 새우깡을 샀고 깡소맥으로 노포를 즐겼다.
시간이 좀 지났나. 동시에 화장실을 갔는데 올라와보니 동생은 없었다. 꽤 많이 남은 과자를 먹으며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왜 안 내려와?’ 나갔다 돌아온 사이 계산을 한 것이다. 계산 한 건 좋은데 안주가 남았는데 아직... 왜 가냐고 물어보니 “어? 나가자고 하지 않았어?” 이때 알았어야 했다. 거나하게 취했다는 사실을.
2차가 끝났을 때도 햇빛은 죽지 않았다. 둘 다 취기가 올라왔지만 아직 밝았기에 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밤에 취하는 게 익숙했으니까.
밖에 서 있으면 뭐하겠는가. 정처 없이 걷다가 술집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우린 나방이었다. 불빛을 향해 무작정 돌진했다. 어두운 을지로 골목에 환한 네온사인. 결국 들어간 곳은 냉동삼겹살집. 배는 꽉 찼는데 술배는 남았기에 무엇을 먹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인원 수대로 고기를 시켰다. 술은 이제 배부르기에 소주만 마신다. 소주가 달았는지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불판 위에 고기 몇 점 먹고 소주를 다 비우자 또 자리를 옮긴다. 술은 주위 분위기에 따라 맛이 정해지지 않나. 옆 테이블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대화의 방향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우린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보단 이런저런 분위기를 즐겼나 보다.
벌써 4차째 인가. 을지로의 어둠이 짙었다. 골목길 가로등에 의존한 채 걸었다. 이젠 밝은 곳에 가기보단 친숙한 곳이 눈에 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 C가 소주는 더 이상 못 마신다 했다. 맥주를 마신다 해서 치킨 한 마리에 500cc 2잔 시키자고 한다. 어차피 안주는 먹지도 않을 거지만, 늘 그랬듯이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양념이냐 후라이드냐, 순살이냐 뼈냐, 추천 표시가 있는 걸로 먹을지 말지 등. 그러다 최근 자주 만났던 모임에 속한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는 뭐 하길래 바쁠까, 쓸모없는 가정을 하며 타인의 이야기를 한다.
평상시 전화를 하지 않는다. 술만 마시면 그것도 취기가 있는 상황엔 다르다. 자리에 없는 친구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전화한다. 전화를 하고 지금 뭐하는지, 우리 술 마시고 있다는 정보를 공유한다. 이후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 인사는 뻔하다. 다음에 같이 술 마시자. 술 취한 안부 전화는 기약이 없다.
이 날 술자리 값만 인당 5만 원 넘게 나왔다. 늦은 밤 공차가 보여 테이크 아웃을 하는 소비 방식이었으니. 취기를 머금고 돈을 풀었다. 돈이 술술 나간 하루였지만 아깝진 않았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술술 했기에. 비록,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