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지만 싱글은 아닌

7. 그 시절 우리의 D.P는 훈련소였다

by 무기명

넷플릭스 화제작 D.P가 흥행하고 있었다. 흥행의 여부를 근처에서 찾는다. 내가 즐기고 있는가, 친구들이 대사나 상황을 흉내 내는가 등. 군대 이야기 좋아하는 친구들에겐 D.P는 노스탤지어이다. "그땐 그랬지"란 대사를 얹으며 살짝 들린 턱과 콧대. 아련한 눈망울. 대체 복무를 한 나는 그들에게 달달한 표적이 된다.


2021. 09. 03.


요즘은 덜 하지만 20대 초반에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군대 이야기만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난 들은 거지만. 현역인 친구들에 비해 편안한 군생활을 했다. 친구들은 어떻게 네가 군대를 안 갔냐, 고3 때 체력 테스트에서 체대 준비생을 제치고 셔틀런 1등 하지 않았냐(이건 살짝 자랑이다) 이런 것과 유사한 핀잔을 준다. 뭐 내가 결정하는 문제는 아니었다며 그저 웃는다. 우린 주로 군대 휴가 나온 친구가 있으면 다 같이 만났기에 자연스러운 군대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났다. 이제 군대에 있는 친구가 없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덕분에 재미는 있었지만 지긋지긋한 군대 썰을 더는 듣지 않아도 되는 나이다.

이런 내가 유일한 군대 이야기. 훈련소 이야기를 열심히 할 때가 있다. 훈련소 동기와 만날 때인데 왜 동창들이 군대 이야기면 얼굴을 붉히며 열변을 토했는지 십분 이해했다. E는 훈련소를 함께했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눈이 좋지 않았던 동기였다. 근무를 하게 될 지역이 가까워 친해지게 되었다. 훈련소 때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스몰토크를 자주 하게 된다. 자기 번호에 맞춰 움직여야 하고 자리에 앉아야 하고 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 양쪽에 앉은 사람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나를 포함한 내 앞자리에 E의 근무지는 가까웠다. 그래서 훈련소가 끝나고도 가끔 만나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E와 단 둘이 만난 적은 두 번째이다. 대체 복무 시절에 훈련소 동기 4명끼리 만나 술을 마신 후 집이 먼 나만 그 친구네 집에서 잤다. 일어나니 어머니가 계셨고 아침밥을 먹고 출근을 한 기이한 경험이다. 그 이후로 3~4년 만에 처음 보는 거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스타그램 스토리 덕택이다. D를 만나게 된 것도 '정규직 전환 사진'이었다. E도 DM이 왔고 이렇게 밥을 먹게 되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친구이다. 훈련소 때 대부분 95년생들이었고. 빠른 96년생이 있었다. 나도 96년 1월생이지만 연도에 맞춰 학교에 가 원래는 다 형들이다. 하지만 한 달만 볼 사이인데 굳이 형이라 부를 필요가 있을까. 축구할 때도 빠른 상황 판단과 순간적인 움직임이 필요하기에 반말을 한다. 훈련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일분일초가 중요한 훈련 상황에 형 동생이 어딨겠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결국 다 친구 하기로 했다. E는 15학번이었고 휴학 없이 졸업해 빠른 취업을 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공대라 한 보험사 IT 직무의 신입이었다. 인턴과 계약직을 거쳐 정규직 사원이 된 나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심플한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연봉이 놀랍다.

재택근무를 하는 E가 우리 회사로 오기로 했다. 갑작스레 일이 생겨 늦게 출발하겠단 말에 금요일 날 자율적으로 야근을 하게 되었다. 넷플릭스에 D.P 시청. D.P가 없었으면 그냥 집에 갔을 것이다. 대략 한 편을 다 보자 거의 도착했다고 한다. 회사 근처에 한 번도 가지는 않았지만 맛있다고 알려진 족발집을 갔다. 미리 가서 주문을 했는데 차갑거나 따뜻한 족발을 선택할 수 있었다. 여기 맛집이구나. 따뜻한 족발이 식으면 차가운 족발이 되니까 따뜻한 걸로 달라고 했다. 음식이 나온 뒤 친구가 도착했고 주먹 인사를 했다.


예전 기억에 술을 잘 못한 걸로 알고 있었다. 조심스레 "술 괜찮아?"라고 물었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술 좋아한다는 말을 하더라. 예상 밖이었고 소주 하나 시켜 간을 봤다. 꽤 속도가 빨랐고 얼굴도 금방 빨개지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술이 쌔진 것인지, 그동안 술을 잘 안 마셔서 간이 쌩쌩한 것인지. 엄청난 친분이 있는 게 아닌 E.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건 짠을 빨리 하기 위한 형식적인 루틴. 술이 2~3잔 들어갔을 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 화제였던 D.P를 시작으로 훈련소 추억을 더듬었다. 서로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기들에 대한 담화는 꽤 흥미로웠다. 훈련소에선 옆자리 이외에 다른 동기들과 비교적 자주 대화하지 못한다. 맞은편에 앉은 E의 주위 동기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미궁이었다. 그렇게 E가 바라본 주위 동기들의 관점을 내게 주입시킨다. "아, 걔가 그래서 그랬구나."

연달아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흐른다. E는 훈련소 때 여사친들에게 빈번히 편지를 받았었다. 당시 싱글이었기에 여자 친구들의 작고 고운 글씨가 담긴 편지를 읽는 그가 부러웠다. 당시 썸이던 친구가 있었는데 잘 안되었고 지금까지 여자 친구가 없다고 했다. 오랜 시간을 혼자 보낸 것이다. 이것이 공대의 설움 아니겠는가. E와 예전에 만났을 때도 난 여자 친구가 있었기에 그녀의 근황을 물어봤다. "너와 술자리를 가질 수 있게 해 줬다."며 LA에 있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듯 놀란 표정을 나에게 보내고 대단하다는 표정을 그녀에게 짓는다. 그리고 술 한 병을 더 시킨다.

9월 3일은 더 강력한 거리두기 지침이 있었다. 저녁 9시까지만 자리할 수 있었는데, 저녁 7시에 만난 우리는 짧은 시간 빠르게 달려야 했다. 아무리 주량이 쌔더라도 평상시 마시는 속도와 다르면 주량은 의미가 없게 된다. 이미 주문한 소주와 술국. 남은 시간은 20분. 남김없이 먹고 마셔야 한다는 정서가 배어 있기에 우리의 짠 소리는 빨라진다. 대화의 쉼표가 찍힐 때 한 잔. 온점이 찍힐 때도 한 잔.

E의 직장은 집 가는 길인 강남 쪽에 위치한다. 다음 만남은 직장 근처로 가서 밥을 얻어먹기로 하고, 밥 한 끼 샀다. 다음에 만날 생각이 없었다면 더치페이를 했을 텐데, 재밌었나 보다. 무엇보다 족발도 맛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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