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지만 싱글은 아닌
8. 나만의 챌린지_독백의 시작
간단한 나만의 챌린지라도 어느 순간 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동안의 만남은 축구에서 일대일 마크로 수비하는 것 같았다. 상대가 걸으면 걷고, 뛰면 뛰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미리 생각하는 등 관찰의 지속성은 역시 피로하다.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미리 생각을 해야 하는 점이 쌓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되었다. 나만의 재정비 시간이 필요했고 오직 '무엇을 할까'의 고민만 생각하고 싶었다. 혼자니까 가능한 고민.
친구와 만나는 건 잠시 유보. 혼자만의 걸음이 필요했다. 편안한 룩의 동네를 벗어나 말끔한 옷을 입어보자. 산책을 하자.
2021. 10. 02.
성수동은 여자친구랑만 가봤다. 서울숲 가기 전 먼지로 한 낙서가 있는 터널, 힙한 사람들이 많은 옷가게, 분위기가 커피 향 같은 카페. 본격적인 혼자만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는 그나마 익숙지 않았던 성수동이 적합했다. 어디를 갈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공간이 필요했으니까. 그래도 빈 가방은 허전하니까 읽다만 책을 챙긴다.
여자친구는 타지에 있어도 성수 어디가 힙한지, 트렌디한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추천으로 책 읽기 좋다는 orer(오르에르)에 갔다. 1층에 도착하니 앞서가는 사람이 말한다. 여기 2층은 조용한 곳이라고.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2층으로 가니 사람들이 짝을 지어 앉아있다. 자리마다 다 두 개씩이다. 노트북이 두 개, 음료가 두 잔인 자리. 그 사이에 책과 볼펜을 꺼내 책 읽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그녀와 영상통화를 한다. 그녀가 가고 싶어 한 카페를 지금 와 있었고 책상에 앉자마자 책 읽는 건 뭔가 정 없지 않은가란 변명과 함께. 적색에 가까운 브라운 컵의 두툼함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원목이 아닌 코팅되고 염색된 두터운 나무 테이블, 어두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핀 조명 들을 배경 삼아 통화를 한다.
orer 2층에는 Point of View라는 문구점이 있다. 그녀가 이 카페를 가장 오고 싶어 했던 이유. 문구점의 기본인 연필부터 노트 그 외 부속품들 모두 포인트 컬러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와 구경을 마치고 3층에도 올라가기로 했다. 3층에는 보라색 네온사인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고 카페가 아닌 그릇이나 액세서리를 구비하고 있었다. 기억에 강력히 남은 건 우디향의 묵직함이다. 향기 마케팅이 왜 있는지 직접 체감할 정도. 그곳의 향기와 어울리게 전시된 물품들은 우디 계열의 색이어서 과장 조금 보탠다면 나무들 사이에 있는 듯했다. 둘러봄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통화도 끝이 난다. 잠깐 잊고 있던 커피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따뜻함은 사라지고 미지근함에 가까운 따스한 온도. 긴 문장, 한 챕터의 온점을 만나면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서의 온점은 쉼표의 역할을 할 때가 다분하다.
책을 다 읽고 나갈 채비를 한다. 다음 행선지는 영상통화 중 정보를 얻은 '카페 포제'이다. 그곳은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1층은 카페지만 지하와 2층은 전시를 하곤 했다. 그날은 EQL이라는 의류 브랜드이다. 라이프스타일 팝업 스토어라 향초, 그릇, 조명, 책상, 의자, 소파가 비치되어 있었다. 둥글둥글했으며 형광 빛 가득한 조명이 눈에 띄었다. 주황색 조명, 대각선 방향의 주황색 소파. QR코드로 확인한 조명의 가격은 25만 원. 자리를 옮긴다. 2층에는 소소한 이벤트를 한다. 참여하겠다고 하면 인스타그램을 켜게 되고 직원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상품으로 EQL 로고의 스티커를 붙인 손소독제를 주더라. 2층은 아기자기한 상품이 많았다. 투명 유리잔처럼 투명하게 그곳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성수동에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디가 힙한지는 사람들이 줄 서있는 곳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동네를 구석구석 가고 싶어 어딘가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처음에 갔던 orer 카페가 중심지였나 보다. 4~5번은 지나쳤다. 내가 쏘아 다닌 곳을 GPS로 선을 이어본다면 아마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직 혼자만의 산책은 어색하다. 원래 목적이 '무엇을 할까'만 고민하는 것이었기에 즉흥성을 체험하는 단계이다. 내공이 쌓이면 산책마저 노하우가 생기고 나만의 루틴이 형성되겠지. 그 루틴이 일상이 되어야 이제 새로운 챌린지가 생기겠지. 챌린지가 생기면 이제 현타가 오려나? 너무 성급하게 걷지 않으려 한다. 천천히 걸으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