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지만 싱글은 아닌

10. 위드 코로나

by 무기명

2021. 11. 01.


위드 코로나. 라면을 좋아하는 나에겐, 큰 냄비를 꺼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4명 이상 만나야 하는 게 암묵적 필수가 된 듯 2~3명 만남에 친구들은 허전해했다. 자연스럽게 '둘만의 만남 프로젝트'도 일단락될 수밖에. 설상가상 갑자기 추워진 날 축구를 하다 발목에 부상을 입어 이곳저곳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이제 하던 걸 마무리하라는 계시인 게 분명하다.


둘의 만남에서 무엇이 남았나. 거울을 맞대고 앉아 있듯 오히려 나에 대해 알게 되더라. 대화의 공백이 생길 때 난 무엇을 하나. 초초해하는지, 술을 마시는지, 화두를 던지는지.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하나. 추억, 직장, 취미. 만남은 비즈니스적인 인터뷰가 아니다. 상대에게 던졌던 질문들은 고스란히 나에게 하는 질문이 된다. 때론 듣고 싶은 질문을 스스로 하지 않나.

우연히 시작한 굉장히 사적인 도전은 여자친구가 한국에 온다면 계속하기는 지난할 것이다.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은 체력적으로 힘들었단 점이 가장 크다. 집중력은 많은 체력을 요구하기에. 그래도 그동안 짧은 기간이지만 나름의 도전을 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코로나19라는 제약을 기회로 삼으려 한 행위. 위기를 발판 삼아 한층 더 성장하려는 한국인의 긍지는 유명하지 않나. 이런 휘황찬란한 말로 어쩌면 이기적인 이색적 도전을 보기 좋게 포장하고 싶다.


혼자만의 시간에서는 무엇이 남았나. 파도처럼 왔다 가는 일시적인 취향이 아닌, 정말 내 취향이 무엇인지 알게 되더라. 눈길이 가는 색. 에매랄드그린, 연보라색, 연회색. 손길이 가는 책. 호흡이 짧은 단편 소설, 장문의 시. 특히 김훈이란 대단한 작가의 문체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관찰력을 관찰하는 재미 포인트가 있었다.

예전에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 영상을 회귀해본다. 사회와 단절된 곳에서 며칠을 보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다뤘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림 실력이 좋아지는 등 특정 부분이 특화되는 현상이 보인다 했다. 혼자만의 시간에는 본인에게 집중하게 되고 내면의 그 무엇을 탐구할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그 무엇을 찾게 되면 계속 반복해서 해보고 자기의 것으로 소유할 것이다. 난 물리적인 곳에 갇힌 건 아니지만 혼자라는 관계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을까.

확실히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었던 글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좋은 문장 및 인사이트를 수집하는 걸 즐겼다. 운이 좋게도 그 시기에 OOO 제품의 크리 아이데이션을 했고, 광고주에 올라가는 방향 6개 중 3가지나 팔렸다. 0년 차 카피라이터에게 이런 행운이 있을까. 올해 행복한 감정이 언제였을지 회상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업적(?)이다.

카피를 쓰다가 막히면 메모해둔 문장들이나 상황을 읽었다. 대부분 최종 카피는 그 메모에서 파생되거나 조금만 각색한 부분도 있다. 뿌듯함을 충분히 즐긴 후 이전과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외장하드를 열어 최근 아이데이션 파일을 보았다. OOO 제품 크리 카피들은 이전과 달리 확실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한 선배는 이번에 인상적인 카피가 많아 노트에 적어둔 게 꽤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광고판은 변덕스럽기에 수정에 수정을 거쳐 커 보였던 내 자식들(아이디어 및 카피)은 흩어져갔고 짬뽕이 되었다. 뭐 짬뽕이 되어도 맛있는 건 그대로지만, 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다 시작한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도전. 위의 '둘의 만남'에 해당하는 글과 분량 차이과 확고하다. 더 할 말이 많았고 술술 써 내려간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역시 둘보다는 하나의 관계에 더 익숙했나 보다. 여자친구가 아닌 다른 친구와의 만남은 역시 신선함을 가장한 낯선 어울림에 가까웠던 것. 친구들은 이를 자유라 불렀다. 자유에 냄새가 있다면 유혹을 풍길 것이다. 화려한 폭죽의 모습을 한. 하지만 그 자유라는 것은 그저 폭죽이 끝나고 난 뒤 주위를 맴도는 거무튀튀한 연기였다. 인위적인 화약 성분의 냄새가 코를 찌르다 사라지는. 그 자유 또한 한시적인 기분일 뿐이었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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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써야지. 꾸준히 써야지. 막연히 생각만 했는데 이렇게 10편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직장동료들과 이야기하며 "그래도 카피라이터인데 책 하나는 써야지" 가볍게 뱉은 말. 덕분에 책이란 무거운 단어를 느낍니다. 물론 책을 쓴 건 아니지만 글을 쓴다는 건 정성을 들인다는 점 또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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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에 드러난 가지각색의 저를 보는 것도 재밌네요. 11편을 살고 있는 제가 10편의 경험을 톺아보고 느낀 점을 짧은 시를 남깁니다.


혼자지만 싱글이 아닌.

혼자가 아니게 해준 너를.

매번 그리워하고 있는.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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