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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Mar 22. 2020

요나고-우에다 쇼지 사진미술관

일본 소도시 14 - 돗토리사구의 색다른 즐거움

요나고의 첫인상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슬로시티. 인구 14만 정도의 요나고는 조용하고 아주 작은 도시이다. 그러나 이 작은 도시가 매력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커다란 힘이 있다. 세계적인 사진가 우에다 쇼지와 건축가 다카마쓰 신, 그들의 작품이 여기 요나고에 있다. 기대감을 갖고, 아침부터 출발이다. 게다가 요나고는 한일 갈등이 한참인 2019년, 자매도시 속초의 산불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성금을 모금하기도 한 곳이다.    

   


우에다 쇼지  사진미술관 찰리 채플린 모자


우에다 쇼지 사진미술관은  다이센 방향으로 약 14km  거리에 있다. 농가와 건널목, 마을길을 지나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돌아간다.  과연 이 길이 맞나 의심이 들 무렵 왼쪽에 갑자기 툭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노출 콘크리트 질감의 하얀 건물, 4개의 전시실이 '소녀 사태' 사진 속 4명의 무심한 소녀들처럼 제각각 서있다.   


우에다 쇼지 사진 작품 - 소녀 사태
소녀 사태에서 아이디어 얻은 네 개의 전시실



우에다 쇼지는 중3 때 사진을 만나 19살에 도쿄로 3개월 유학을 다녀온 후 사진관을 열었다. 88세까지 약 70년을 고향에서 사진 작업에 몰두했다. 피사체를 오브제처럼 배치하는 독특한 기법, 우에다 방식으로 인정받은 그는 세계적인 사진가로 이름을 알렸다. 거대한 사구를 배경으로 아내와 세 자녀를 찍으며 작업을 이어갔다. 우에다의 사진 속 인물들은  함께 있으나 각자의 색을 갖는다.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는  안목이 돋보인다. 시간이 지나도 본질은 변치 않는 우에다의 시선이 흑백 사진에 머무른 느낌이다.


우에다 쇼지의 가족이 오브젝이 된 사진



인상적인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뢰송에게서 결정적 순간을 담는 사진예술을, 세바스찬 살가두에게서는 평등과 정의의 사회참여를 느꼈다면, 우에다 쇼지는 일상을 바라보는 편안함을 전해준다.

사진예술은 잘 모르지만 느낌이 그러하다.


 모교 순천여고 교복과 똑같은 옷을 입은 두  소녀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너무 궁금했던 사진도 있었다. 주변의 작은 것 하나도 애정과 관심을 갖고 표현하는 것의 즐거움, 자신의 관점에서 철학을 앵글에 담것이 사진의 매력일까?


세일러 교복 입은 두 여학생 사진 작품



1995년 개관한 우에다 쇼지 사진미술관은 그가 기증한 15,00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건축가 다카마쓰 신이 다이센을 반사 대칭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미술관 안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카메라 렌즈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카메라 앵글처럼 만든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다이센을 배경으로 모자와 지팡이를 들고 찰리 채플린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다카마쓰 신은 오키나와 현립미술관도 설계한 건축가이다. 미술관 로비에서 둥글게 천장을 받치고 있던 우아한 조형물 속으로 실내에 빛이 들어오던 모습이 생각난다.


우에다 쇼지 사진미술관 외관
오키니와 현립미술관의 외관
자연채광 으로 실내에 빛이 들어오는 구조

 


돗토리 사구 가는 길구라요시 마을 들렀다. 시라카베 도죠는 하얀 벽 창고, 아카가와라는 붉은 기와이다. 에도 시대 지어진 창고와 상인들의 거주지를 그대로 보존해 놓은 마을이다. 회반죽을 바른 흰색 벽에 검게 그을린 삼나무 판자를 덧대고, 지붕엔 빨간 기와를 얹은 창고들이 수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수로에는 파란 하늘이 담겨 있고, 목조건물이 즐비한 옛 거리는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사진 찍기에 부족함 없는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구라요시 전통 보존지구 마을
시라카베 도죠와 수로



세월이 묻어나는 목조 건물들이 지금은 공방이나 양조장, 토산품 가게, 음식점, 카페, 잡화점 등으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구락카페에 들러 옛날 방식대로 맷돌을 돌려 커피를 빻았다. 커피머신이 맷돌인 셈이다. 따끈한 커피에 팥을 곁들여 마시고, 당고를 불에 익혀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먹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요네자와 붕어빵도 먹고, 작은 사진관에도 들렀다. 딸이 한국에서 온 아마추어 포토그래퍼라고 자신을 소개했더니 오래된 후지 24 필름을 선물로 건네준다.  사진관에서 만난 작은 기적에 감동받은 모습이다

   

맷돌로 커피를 빻은 수제 맷돌 커피 머신
구락카페에서 먹었던 옛사람들의 음식과 팥이 있는 커피



남북 2.4㎞, 동서 16㎞의 일본 최대 규모이며, 일본 3대 사구 중 하나인 돗토리 해안 사구는 국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수만 년 동안 거듭된 해풍과 화산재를 통해 자연의 시간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곳이다. 사구를 꽤 걸어간 후  40m의 모래언덕을 올라가는데 아래쪽에는 오아시스처럼 물웅덩이가 제법 크다.


드넓은 사구를 걷는 모습



점핑을 해보기도 하고, 잠시 앉아 쉬어보기도 하면서 헉헉~ 가장 높은 지점인 ‘우마 노세’(말의 등)로 향했다. 포기하지 않고 언덕 위에 오르니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람이 땀을 씻어준다. 해변까지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사구가 눈에 들어오고, 모래 언덕에는 아름다운 물결무늬가 선명하다. 바람이 모래 위에 그리는 문양이 시시각각 변한다. 사구는 ‘자연의 캔버스’라 하는데, 바람이 새겨놓은  파도 문양을 보려고 연간 250만 명 이상 찾는다. 문득 작은 깨달음.  지정하여 보존한다고 개발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이건 사람이건...    


사구 언덕 너머 만나는 푸른 바다



고속도로를 타고 요나고로 다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모두 안전모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간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헤어스타일 망가진다고 잘 쓰지 않는데, 어릴 때부터 안전모 쓰는 교육과 습관이 필요하다. 오른편에 펼쳐진 바다에서 은빛 물결이 빛나 눈부시다. 점차  황혼 빛이 바다를 물들이고 어슴프레해진다. 요나고에 도착하니 3자 모양으로 쭉 이어진 아름다운 해안이 보인다.


안전모를 쓰고 자전거 타는 학생들



 해안선 따라 1㎞에 걸쳐 있는 가이케 온천. 100년 전 한 어부가 수심이 얕은 곳에서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온 것을 발견했다. 가이케는 "모두를 살린다"는 뜻으로 탁월한 치료효과가 알려져 있어 일본 천황도 다녀간 곳이다. 해수온천이라 해수욕과 온천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신진대사를 돕고,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을 높여준다고 하니 연 40만~50만 명 정도 다녀간다. 또한 일본의 철인 3종 경기 발상지로 매년 이곳에서 수영, 사이클, 마라톤 3종 경기가 개최되고 있다.     


온천지역에 세워진 인물상



 바닷가에 위치한 가이케 료칸 호텔 3층 화양실에 숙소를 잡았다, 한글로 안내되어 있어 편리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원하는 색상을 마음대로 골라 입을 수 있도록 유가타를 준비해 놓았다. 꽃무늬가 어여쁜 유카타를 입고 허리끈 매는 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흉내 냈다. 별관 온천장은 히노끼탕을 비롯 다양한 시설들이 있고, 노천온천의 수질이 매끄럽다. 늦은 밤, 노천탕에서 밤하늘 별들이 총총 보였다. 온천이 보약이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가이케 온천들



1990년대 수산업의 쇠퇴로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며 경제적으로 쇠퇴해진 사카이미나토. 미즈키 시게루의 허락으로 ‘게게게의 기타로’ 요괴 캐릭터들의 동상이 설치되면서 사람이 모여들고, 지역 상권이 살아나게 되었다. 요괴 만화가 도시 재생의 요소가 된 것이다. 역에서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까지 800m에 이르는 요괴 로드는 요괴들의 천국이다. ‘게게게의 기타로’에 등장하는 수많은 요괴를 만나 볼 수 있는 명소로 연간 200만 명이 찾는다. 요나고 역까지 요괴를 테마로 한 요괴 열차도 운행한다. 열차 외관 및 내부는 요괴들로 꾸며져 있다. 요나고 공항 창문에 그려진 요괴들이 여기 다 모여 있다.     




유메미나토 타워는 여권 제시하면 입장료는 반값, 지상에서 가장 낮은 43미터 타워이다. R층에서 360도 뷰로 바라보는데 아름다운 해안 경치가 쭉 이어진다. 멀리 산인 지방의 후지산이라 불리는 다이센도 보인다. 행복의 종, 일본 전망대 20여 곳 사진 등을 간단히 둘러보고 공항으로 가는데 10분 정도다. 크루즈터미널도 근처에 있으니 교통 입지가 편리하다. 이 곳의 성공은 시장의 리더십, 시민들의 참여와 함께 여러 가지가 서로 맞춰졌기 때문이다. 도시 재생사업의 기본은 함께 참여하기이다. 미래사회는 협력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만화에 등장하는 요괴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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