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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Mar 26. 2020

구라시키-우정으로 빛나는 미술관

일본 소도시 11 - 아이비가 넘치는 봄빛 도시


다카마쓰에서 픽업한 자동차를 히로시마에서 반환하기로 하고, 운전하고 세토대교를 너기로 했다. 

시코쿠 사카이데에서 히츠이시 섬을 지나 구라시키 방면으로 이어진 세토대교. 9년 6개월 공사 끝에 1988년부터 개통했다. 아래층은  철로, 위층은 자동차 도로, 3개의 현수교를 비롯 6개의 긴 다리를 포함하면 13.1㎞ 구간이다. 주탑의 높이가 백 미터를 훌쩍 넘는다. 규모 7 이상의 지진에도 견뎌낼 수 있는 튼튼한 다리이다. 


 나오시마 여행 때 멀리서 바라만 보던 세토대교를 차로 직접 통과하니 나름 느낌이 있다. 친구는 옆에서 양 쪽 바다에 떠있는 섬들이 그림 같다고 좋아한다.  룰루랄라~~ 1시간 정도 이동하는데 헉, 통행료가 꽤 비싸다. 거의 4800엔 이면 우리 돈 5만 원 정도이다. 이번 여행 교통비가 만만치 않다.

 

세토 내해를 지나는 세토대교


구라시키는 오카야마현에 속한 인구 48만의 아담한 도시다. 창고와 집이 합쳐진 것에서 유래한 구라시키. 과거 하천 양 옆 흰 벽에 검은 기와를 얹은 쌀 창고가 빼곡히 들어섰고, 쌀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가 수시로 오갔던 곳이다.  쇠락의 길을 걷던 이 곳에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방적 사업으로 부를 축적하여 비어 있던 80여 채의 쌀 창고를 갤러리, 상점, 카페, 레스토랑 등으로 탈바꿈시켰다. 이후  1979년 옛 경관과 현대 감각이 조화를 이룬 미관지구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명소가 되었다.   


구라시키 강  후네 나가시 나룻배 유람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다리를 건너니 수양버들 늘어진 물길 위로 한가롭게 나룻배가 지나간다. 구라시키 강의 수로를 중심으로 흥겹게 공연하는 사람들, 수제 장식품을 판매하는 사람들, 느릿느릿 수변을 걷는 사람들, 배를 타고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후네 나가시는 나룻배 유람, 겨우 15분 정도라 아쉽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을 따라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1920년대 오하라 마구사부로는 병약한 아내가 편히 지낼 수 있게 유린소를 지었다. 유린소는 일본 근대 건축의 명장들이 함께 만든 건축물이다. 빛바랜  주황빛 지붕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 내부 정원이 아름답게 가꿔져 있다고 하는데 아쉽다.  봄, 가을 딱 두 번 개방하는 집이라 볼 수 없다.  밖에서 보기에도 건축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오하라 마구사부로가 아내를 위해 만든 집 유린소


수변을 따라 다 보면 하얀 그리스풍 건물이 보인다. 바로 모네의 연작, 수련을 소장하고 있는 오하라 미술관이다. 1930년 설립한 일본 최초의 서양식 근대 사설미술관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엘 그레코,고갱,로댕,모네, 샤갈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원작을 만나는 행운, 행복한 관람이다.

지역 유지였던 오하라 가문은 방적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장학 사업에 힘을 기울였는데, 장학생 중 한 명이 오하라 미술관 설립에 영향을 미친 고지마 토라지로. 오하라 마고사부로는 고지마 토라지로의 평생 친구이자 지원자였다. 토라지로는 마고사부로의 지원으로 그림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또한 그의 후원으로 거장들의 작품을 하나씩 사들였다. 모네의 작품 ‘수련’도 토라지로가 직접 찾아가 구입한 작품이다.


우정으로 헌정한 오하라 미술관 외관


맨 처음 만나는 토라지오의 작품



1930년 문을 연 오하라 미술관은 토라지로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마고사부로의 헌정 미술관이다. 우정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긴 여운을 안겨 준다. 그의 작품이 미술관 맨 처음에 전시되어 있다. 따뜻한 색감과 빛깔이 르느와르를 생각나게 한다.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밝고 환하다. 

 입장료 1,000엔이 결코 아깝지 않을 만큼 원작 명화들이 가득하다. 입구에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 조각상이 반긴다.  뒤편 분관에는 일본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쌀 창고를 개조한 공예관과 동양관에는 동양의 고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명화의 원작들을 소장한 오하라 미술관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우정에 박수를 보낸다.  서로 믿어주고 인정해 준 그들의 우정이 참으로  멋지다. 친구와 함께 한  이번 여행, 오랜 우정에 추억 쌓기이다.

 

오랜 진구와 함께 추억 쌓기 여행
아이비로 둘러싸인 카페 엘 그레코



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카페 엘 그레코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아이비가 온 벽을 덮고 있는 이 건물은 1959년에 개업한 유서 깊은 카페이다. 화가의 수태고지 작품을 돌이켜보고자 안으로 들어갔다.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이라, 허걱! 자리가 없다. 아쉽지만 패스. 강을 따라 곳곳에 건축물, 절, 신사, 고택,  전통 정원 등 저마다의 색깔이 있는 경관을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더 좋았다.  


구 오하라 주택 좁은 골목길을 지나 쓰루가타야마 공원 언덕을 오르는데 옛 일본 시대로 들어간 듯하다. 계단 위에는 북두칠성의 별자리 토대로 지어졌다는 절 세간지와 구라시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칸류지가 반긴다. 조용하고 정숙한 절집을 둘러보고 오른쪽으로 꺾어 아치 신사에 도착하니 일본 색깔이 드러난다. 한적하고 고요한 느낌이다. 정채봉의 문장 부호 중 쉼표를 떠올려본다.


쓰로가타야마 아치 신사



옛 정취 물씬 풍기는 골목을 거니는 것도 나름 괜찮다. 회벽과 검은 기와가 선명한 조화를 이루는 구라시키 민예관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또한 독특한 전통문양의 벽, 네모난 기와와 기와 사이를 회반죽으로 이음새에 발라 굳히는 방식으로 오래 보존하는 나마코 카베를 볼 수 있다. 나마코는 해삼을 뜻하는데, 기와 사이의 이음새에 회반죽이 볼록 나와있는 모습이 해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이비로 포장된 아이비스퀘어



 아치 신사 내려오는 길의 아이비스퀘어도 빼놓을 수 없다. 붉은 벽돌로 쌓은 외벽을 온통 아이비 덩굴이 감싸는 이 곳은 옛날 방직공장을 리모델링 해 호텔과 레스토랑,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건물의 기본 형태는 유지한 채 내부시설을 바꾸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더해 모던하게 변신한 곳이다. 곁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오르골 소리,  맑은 음색이 사람 마음을 홀린다. 자신만의 양초를 만들어볼 수 있는 양초 공방 캔들 월드도 있다.  이 곳의 인상적인 모습은 중년의 지역 주민들이 이젤을 세우고, 캔버스에 아이비를 담고 있는 여유였다. 토요일이라 그림 동호회 활동 인 듯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아이비스퀘어의 봄을 담는 화가들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걷다가 이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명물 스마일 푸딩을 맛보고, 배가 출출해 지자, 근처 아즈미 소바집에 들어갔다. 깔끔하고 맛있는 텐모리 텐뿌라 소바 메밀을 먹었다.  동그랑땡 같은 맛이 나는 야끼토리가 곁들여져 풍미가 더해졌다.


구라시키 미관지구 아즈미 소바집



남쪽 고지마 지역은 점포 40여 곳이 줄지어 늘어선 청바지 마을.  바닷물을 머금어 염분이 강한 토양은 쌀농사 대신 면화 재배에 유리했고, 섬유 도시의 자양분이 됐다. 최대 버선 생산지에서 최대 학생복 생산지로 변신을 거듭했다, 일본 청바지가 처음으로 현지 생산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또한 스톤워시 빈티지 청바지가 연출된 곳이기도 하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청색 아이스크림과 빵도 즐길 수 있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독특한 사진 한 장은 확실하게 남길 수 있다.    

 

구라시키의 문화적 자산은 역사와 지형을 배경으로 성장해 온 삶의 모습들이다. 우리도 지역재생을 위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유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우리 지역만의 특징을 잘 발굴하고 유지하는 주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친구와 함께해서 더 좋은 구라시키 여행이었다.
             

손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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