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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Mar 15. 2020

히로시마-종이학에 담긴 평화

일본 소도시 10 -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를 찾아

히로시마는 어쩐지 상처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 미뤄둔 여행지. 2017년 7월 삼청동 현대미술관에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전시회를 보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단 고고싱!  기구, 기념비,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사회적 약자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표현했는데, 히로시마 원폭돔을 빌려 반핵을 이야기했다. 물에 비친 원폭돔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히로시마로 향하는 동안 원폭과 평화라는 두 단어가 교차한다.  

  

크지슈토브 보디츠코의 히로시마 프로젝트


 1965년, 이부세 마스지가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자전적 체험을 담담하게 풀어간 소설 ‘검은비’가 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원자폭탄이 투하되던 말 찐득한 검은비를 맞은 조카 야스코. 징용을 피하려고 야스코를 데리고 있던 시게마쓰 삼촌. 원폭 투하 당시 히로시마에 있었다는 이유로 조카의 결혼이 번번이 무산되자 원폭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증명을 위해 당시의 일기를 필사한다. 그 속엔 웅크린 채 죽어간 사람들, 검은비에 살이 녹아 흘러내린 좀비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5년 후, 친구들이 죽어가고, 결국 조카에게도 피폭증이 나타나 그 충격으로 아내도 죽게 된다. 구급차에 실려 가는 야스코를 보내면서 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1989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검은비’를 영화로 만들었다. 1945.8.6. 오전 8시 14분 폭발음과 함께 무너지는 시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야스코의 삶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정의의 전쟁보다 부정의 평화가 좋다고 말한 시게마쓰의 항변이 아직도 남아있다.     


수로가 흐르는 히로시마 도시 전경
영화 검은비-연못의 주인은 잉어라는 삼촌과 야스코


히로시마 역에서 히로덴 2호선을 타고 15분 정도 지나 겐바쿠돔마에역에 도착하니 앞에 원폭돔이 있다. 체코의 건축가 얀 렛트르가 설계한 3층 철골 돔을 지붕으로 얹은 상업전시관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지붕과 마루, 내벽이 무너지고 골조만 남은 파괴된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원폭돔을 찾은 사람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인류의 잔혹한 역사 현장에 눈물짓기도 한다. 나는 소설 속 수로에서 배를 타고 오던 20살의 야스코를 생각했다. 고단한 삶을 살아냈을 평범한 시민들을 기억했다. 마땅히 누려야 할 당연한 평화가 어렵다는 것도!     


골조만 남은 원폭돔의 전경


길 건너 오리주루 타워, 13층에 오픈 테라스가 있다. 오리주루는 일본어로 종이학! 일본에서는 장수와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병이 낫는다고 믿음이 있다. 히로시마의 비극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여러 곳에서 종이학을 접어 보내는데, 연간 약 1천만 마리! 무게로 하면 약 10톤에 달한다. 여권을 보여주면, 입장료 50% 할인이다. 13층에 올라가니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원폭돔과 주변을 흐르는 초록빛 수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티뷰를 바라보는 전망대는 그물망이 있어 안전하게 장치되어있다. 마음은 다소 무거운데 오월 초록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오리주르타워에서 바라본 원폭돔과 수로


오리주루타워에서 스타디움을 따라 북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히로시마 미술관이다. 히로시마 중앙 공원의 녹지를 미술관 정원으로 끌어왔다. 1978년, 도쿄스카이설계로 유명한 니혼세케이에 의해 설계된 사각형 안에 둥근 원의 구조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원이 본관이고 앞쪽은 출입구 뒤쪽은 특별관, 양 쪽은 회랑으로 연결되어있다. 인구 120만 규모의 도시인데, 일본 서양 걸작 100선 중 9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고흐, 르누아르, 피카소 등 인상파를 중심으로 프랑스 현대 미술과 일본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 le jardin de daubigny가 인상적이었다. 특별관에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를 주제로 하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발상이 재미있었다. 정원에 서있던 안톤 브루델의 ‘과일을 든 나부’를 흉내 내고, 에밀리오 그레코의 ‘Laura’ 브론즈 조각에 시선을 빼앗겼다. 멋진 작품들이 많아 부럽다.     


히로시마 미술관 외관
반 고흐 le jardin de daubigny
안톤 브루델의 ‘과일을 든 나부’ 조각상


근처 히로시마성은 나고야성과 오카야마성과 함께 일본 3대 평성 중의 하나. 1589년 모리 데루모토에 의해 축조되었다. 원폭 투하 때 국보로 지정된 화려한 천수각이 무너지고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1958년 재건되어 현재 성 내부는 히로시마의 역사를 알리는 향토관과 전망대로 쓰고 있다. 5층 전망대에서 히로시마 시내를 조망할 수 있으나 공사기간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해자에서 배를 타고 성을 한 바퀴 돌았다. 뱃사공의 설명과 노래보다 여유롭게 성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해자에 둘러싸인 히로시마성


히로시마 대표 요리는 오코노미야끼.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밋쨩 핫초보리 본점을 방문, 늦은 시간에도 줄이 길다. 토핑 몇 가지를 골라놓고, 30분 이상을 기다렸다. 드디어 등장한 일본식 두툼한 빈대떡, 오꼬노미야끼. 마요네즈와 소스가 얹혀있는데 조금 짜다. 음~~ 아쉽지만 음식 스타일과 맛이...일본인들에게는 잘 맞나 보다. 전철 타고 우지나산초메에서 내려 찾아간 곳은 천연온천. 다양한 유형의 온천수에 피로를 풀고, 평화공원과 가까운 도미인 히로시마 호텔로 들어왔다.    


다음날 새벽, 조용한 가운데 평화공원을 둘러보려고 일찍 나섰다. 입구에 평화의 시계탑이 뒤틀린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원폭이 투하된 시각인 오전 8시 14분마다 시계탑 종이 울린다.

평화기념 자료관을 비롯하여 원폭희생자 위령비, 평화도시 기념비 등이 세워져 희생된 사람을 위로하고 있다. 원폭 소녀상은 두 팔을 들어 학을 받치고 있는 독특한 구조와 종이학 걸어놓은 유리박스가 눈에 띄었다. 종이학 천 마리 접으면 소원을 이룬다 해서, 964마리를 접다 말고 죽은 사사키를 위해 동급생들이 건립했다. 일본 각지에서 종이학을 접어 보내기 시작, 여전히 공원에는 학이 배달되고 있다.     


종이학을 들고 있는 평화의 공원 소녀상


미국은 일본군 전략기지였던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했으며, 우리나라의 광복과 더불어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었다. 피폭, 섬광화상, 질병과 부상으로 약 20만 명이 죽었고, 도시의 90%가 무너졌다. 희생자 중 10%, 2만 명의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소중한 목숨을 빼앗겼다. 서둘러 혼카와 교 다리 부근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를 찾아갔다. 이국땅에서 헤매는 혼령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드렸다. 매년 8월 5일 위령제가 거행되지만 좀 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아직까지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관심과 양심 있는 지원을 요청하고 싶다. 이런 어려움은 누구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아침 기운을 받아 새롭게 깨어나는 강물 위로 두루미들이 찾아와 쉬고 있다. 강이 주는 평화이다. 공원에는 휴일 아침 운동하러 나온 분들이 있고, 위령비에 종이학을 놓는 사람도 있다. 이게 일상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평화공원 한국인 위령비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점을 바라보고 있는 히지야마 언덕에 세워진 히로시마 현대 미술관을  낑낑대며 올라갔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땀이 흥건해질 때쯤 입구에 도착했다. 전망 좋은 야외에 설치된 커다란 청동문은 ‘아치’라고 불리는 헨리 무어의 작품이다. 원폭 투하 후 발생하는 버섯구름에서 모양을 따온 듯하다. 시가지를 바라보니 도시는 평화 그 자체이다. 반대편 계단을 올라가니 푸른 공원에 은빛 미술관이 서있다. 1989년, 유명 건축가 구로가와 기쇼가 설계한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외관은 돌로 기반을 만들고, 가운데는 타일, 위쪽은 알루미늄 사용으로 일본과 서양의 건축양식을 결합되었다. 핵무기 폐지와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 등 ‘히로시마의 정신’이 표현된 둥근 하늘과 열린 공간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예술이 표현하는 힘이 대단하다. 미술관 카페에서 잠시 쉬며 아사히 커피를 마시는데 스타 벅스의 유사 상품이다.      


평화의 상징 히로시마 현대미술관


버섯구름 모양의 청동문


슈케이엔은 1620년, 영주 아사노 나가아키라 별장 정원으로 조성된 곳이다. 중국 항저우 서호를 본떠 ‘슈케이엔’이라고 불린다. 가운데 연못을 두고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회유식 정원이다. 너무 늦게 도착하여 입장하지 못했다. 근처 히로시마 현립미술관은 도서관 부지를 확장 신축하면서 세로로 길쭉한 형태를 띠고 있다. 지역 출신 작가를 조명하며 히로시마 미술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곳이다. 슈케이엔이 잘 보이도록 로비 한쪽 전체를 유리창으로 만들에 정원의 대형 풍경화를 볼 수 있다.


히로시마현립미술관

    

중국 항주 서호를 본 따서 만든 슈케이엔


히로시마, 여행은 내게 평화의 가르침을 주었다. 어제의 아픔을 이겨 낸 오늘의 성장이 내일의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신념과 함께 히로시마에서 발견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리 동포들의 아픔과 기쁨도 배려하는 성숙한 안목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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